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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64) 십자가의 성 요한 (1)

눈비 들이치는 방에 살며 완전한 가난 실천, 수도회 개혁 위해 금욕 ·극기 생활, 온갖 모함 불구 ‘탁월한 성덕’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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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는 소위 종교 분열의 시기로, 이단과 이교가 난립했다. 그래서 신앙이 약한 많은 이들이 참 진리를 버리고 교회를 떠났다. 하지만 이 시기는 영광의 시기이기도 했다. 진정한 종교 개혁자인 교회 성인들이 많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교회 내부를 쇄신하는 한편, 가톨릭 영성을 더욱 심화하고, 전교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십자가의 성 요한(St. Joannes de Cruce, 축일 12.14)이다.

요한은 1542년 6월 24일 스페인의 가스티아 주 폰티베로스 마을에서 태어났다. 본래 명문 귀족 집안이었지만, 요한이 태어날 당시는 가세가 기울어 매우 가난한 상태였다.

이름이 요한이 된 것은, 태어난 날이 성 요한 세례자의 탄생일과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요한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생활고에 쪼들리던 어머니는 요한을 처음엔 목수의 조수, 다음은 양복점과 조각가의 제자로 보냈으나 요한은 도무지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요한은 이후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채용되었으며, 쉬는 시간을 이용해 인근에 예수회가 경영하는 신학교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하느님의 섭리로 신학교 수료 후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한다. ‘십자가의 요한’이라는 이름은 가르멜 수도회에서 착의식 때 수도명으로 정한 것으로, 이는 그의 고난의 삶을 예고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가르멜 수도회는 퇴폐한 시대 사조의 영향을 받아 완덕에 대한 열망이 거의 없었다. 수도원내 분위기도 매우 어수선했다. 이 시점에 테레사 성녀는 자신이 속한 가르멜 수녀회의 개혁에 착수했으며, 남자 수도회의 개혁은 십자가의 요한에게 청했다.

이에 요한은 뜻을 같이하는 안토니오라는 수사와 함께 개혁에 본격 나서게 된다. 완전한 가난을 실천하며 엄격한 금욕 및 극기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들의 방은 너무 좁아서 다리를 펼 수 없을 정도였다. 또 천장은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낮았다. 눈이나 비가 오면 그대로 방안으로 들이쳤다. 그럼에도 이들은 조금도 싫은 내색을 않고 오직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생활했다. 그리고 맨발로 다니며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고하고 죄악을 경고했다. 이러한 모습을 본 많은 이들이 찾아와 함께 생활하기를 원했고, 그 지원자 수는 날로 늘어갔다. 요한은 그들 모두를 반갑게 맞으며,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기존의 냉랭하고 타성에 젖은 수도생활을 이어가던 수사들은 이러한 요한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리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모함하고 수도생활을 방해했다. 가르멜 총회가 열렸고, 총장은 요한을 수도원의 동굴 지하실에 감금토록 했다. 요한은 그곳에서 갖은 모욕과 학대를 받았지만 모든 시련을 묵묵히 이겨냈다. 항변하거나 저항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오히려 덕을 쌓게 하는 감사한 은인으로 생각했다.

이 같은 탁월한 성덕은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게 된다. 곧 요한의 결백함이 드러나게 됐고, 교황 비오 5세 및 그레고리오 13세는 요한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모임을 특수한 가르멜회로 공인, 비준했다.

이제 요한에 대한 모든 오해는 완전히 해소됐다. 요한은 명상에 잠겼고, 하느님을 체험했으며, 그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제자들에게 전수했다. 그는 삶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 사랑의 부르심을 받은 인간의 소명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았다. 또 모든 영혼들을 인도하기 위해 영적인 가르침들을 펴고자 했다.

그러던 1591년 6월이었다.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향하던 그는 열병에 걸려 스페인에 남게 됐고, 9월 우베다 수도원으로 옮겨진 후 4개월만에 눈을 감았다.

그의 삶은 이후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았으며, 결국 1675년에 시복되었고, 1726년에 시성되었다. 그는 신비 신학의 명저에 나타나는 초자연적 지식으로 1926년에는 비오 11세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언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3년 스페인 언어권의 모든 시인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23년간의 개혁 가르멜회 생활을 통해 가르멜회 회원들에게 영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예언자 엘리야보다 훨씬 더 많은 영성적 영향을 주었다. 특히 삶 안에서의 십자가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그 가르침은 「어둔밤」과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등 보석같은 저술들을 통해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정영식 신부 (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 (엘리사벳·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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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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