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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200. 거머리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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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아들은 힘든 일은 하려 하지 않으면서 늘 자신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대도 안 가려하고 취업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집에서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있지요. 언젠가 운동 삼아 등산이라도 가라고 했더니 "내려올 텐데 왜 올라가느냐"고 따지고 들더군요. 그런 아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그런 아들과 아예 밥도 같이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돈이 생기는 대로 먹고 놀면서 실실 웃고 다닙니다. 제 아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속이 터지시겠습니다. 요즘 그런 자식을 둔 부모가 부쩍 늘어나 속이 터지겠다는 분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고생이 많았던 부모 세대가 자녀만큼은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부작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어쨌거나 아드님은 달라지기 어려운 상황인듯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길 때는 절대 달라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술자리에서 건배할 때 "이대로!"라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지금 삶이 살 만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바꾸자!" 하고 건배하는 사람들은 지금을 불행한 삶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삶이 자기가 생각하기에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절대 변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드님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지금 불행한 사람은 부모님뿐이고, 아드님은 행복자이기에 절대 자기 삶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분은 "자식이 행복하다고 하면 그냥 둘 것이지, 무슨 잔소리를 하느냐"고 합니다. 대책없는 행복론자들이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합니다. 행복도 행복 나름입니다. 아드님의 경우는 건강한 행복이 아니라 `병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아드님의 문제는 `기생충 콤플렉스``거머리 콤플렉스`입니다.

 자기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는 삶, 마치 기생충이나 거머리처럼 남의 피를 빨면서 사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런 유형의 사람은 변화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서 연가시처럼 됩니다. 사람을 숙주로 삼아 자신이 내장의 일부인 것처럼 달라붙어 사는 연가시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붙어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걸인은 동냥하는 노동이라도 하고, 노숙자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고달프고 추운 거리로 스스로 나왔는데, 기생충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부모가 죽을 때까지 얹혀살려고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이유는 의지력이 약해서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인내심과 의지력이 강하지 못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소비 욕구를 채우고 싶어하고, 힘든 일보다는 쉬운 일, 달착지근한 쾌락을 추구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성향을 `자기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야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방치해버리면, 마음 안이 잡초들로 가득하게 됩니다.

 즉, 장기적 비전을 갖고 인생 설계를 하고 저축하고 인내심을 갖고 대인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그냥 되는대로, 돈이 생기는대로 사는 철없고 미성숙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부모가 방치한 아이처럼 말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행복을 갈구한다 하더라도 때로는 원치 않는 역경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런 때 역경에 직면하고 대응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거북이처럼 자신의 껍데기 안으로 들어가면 `행복 중독증 환자`가 돼버립니다. 내면적으로 공허해서 그것을 채워줄 대상을 찾아 계속 헤매게 됩니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의 결정적 착각은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이 건강한 행복이 아니라 아편처럼 서서히 사람을 폐인으로 만든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특별한 처방은 없습니다. 단지 너무 잘해준다든지, 연민을 갖고 바라본다든지 하는 것은 절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사람은 병과 나이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됩니다. 나이 들어 도움 주던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이 병들고 나면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듦과 병이 은총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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