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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203. 사랑 타령이 지겨워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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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요즘 드라마를 보면 노상 사랑 타령입니다. 볼 때마다 지겹다는 생각이 들고, 왜 저렇게 사랑에 목을 맬까 하고 한심한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게 `사랑 사랑` 하다 결혼해서는 이혼 타령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머리가 빈 것들`이라고 느낄 정도로 짜증이 나고요. 그런데 성당에 가도 신자들이 사랑 타령입니다. 참 지겹습니다. 뒷전에서 서로 험담하고 미워하면서 앞에서는 사랑 타령을 하는 꼴들을 볼 때마다 역겹다는 마음이 들어 성당에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 드네요.

 또 신부님들이 강론 때마다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하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도 않습니다. 사랑이란 것이 그런 힘이 있다는 생각이 안 들고 사랑 타령은 무기력한 사람들, 회피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만든 가짜 감정이란 생각이 드네요. 제 생각이 틀렸나요?

 
 A. 형제님이 가진 생각은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 한꺼번에 답을 줄 수는 없는 내용입니다. 하나씩 풀어가지요. 우선 드라마에서 사랑 타령을 하며 사랑이란 감정에 목을 매는 등장인물들은 대개 심리적으로 건강치 못한 사람들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은 대개 `분리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징이지요. 부모가 자기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으로 사는 아이들은 찰떡처럼 부모 옆을 떠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른이 돼서는 상대방에게 달라붙어 불안감을 달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사랑 타령을 하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은 편안함인데, 만약 그런 사랑이 아니고 목매고 매달리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병적 집착일 가능성이 높으니 형제님이 보기에 지겨울 만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왜 내가 드라마의 사랑 타령을 보면서 지겨워하는가 하는 자기 질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 보면 되는 드라마를 보면서 `저것들은 노상 저 모양이야`하고 지겨워하고 화를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형제님은 그런 것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본인의 감정은 들여다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개 다른 사람이 죽네사네하는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한 감정을 갖는 것은 자신만의 트라우마, 마음의 상처나 병적 콤플렉스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의 심보라고나 할까요. 내가 해보지 못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그런 식으로 없애려 하는 것인데, 바람직하지 못한 해소 방법이지요.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그리고 지금 연애하고 있다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렵지요. 드라마를 보지 말든가, 그 시간에 다른 여러 가지 생산적 일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혼을 사랑 타령과 결부시키는 해석 방법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한 마디로 무지막지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혼은 단순히 사랑이 식어서 생기는 문제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은 생각입니다. 이혼은 상호 간 복잡미묘한 심리적 갈등이 오랫동안 첨예하게 부딪치다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싸잡아 말할 것이 못 됩니다. 성당에서 신자들 간에 생기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은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마음의 병원이지, 건강하고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형제님 논리대로라면 `왜 병원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끔 형제님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당 사람들이나 바깥 사람들이나 똑같아` `아니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아` 하는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일명 `종교 무지렁이`라고 하지요. 이런 사람들은 대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들인데,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 때문에 종교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됐건 형제님은 다른 사람들보다 본인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거나 풀 수 없는 복잡한 구조로 돼 있는데, 형제님은 단순한 논리로 칼질하고 있으니 수술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려잡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생각이 짧고 얄팍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은 선동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혹하게 할 수는 있는데 시간이 가면서 내적 빈약함이 드러나 결국 소외를 당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자기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삼류 드라마 보면서 자신이 대단한 심리학자인 양 하지 말고, 심리학 관련 책을 읽으며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나이 든 이들 중에 동네에서는 잘난 척, 아는 척 하는데, 밖에서는 아주 기가 죽어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형제님도 지금 공부하고 깊이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 `주책바가지`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으니 자기 반성 잘 하시고 인생길 잘 걷기를 바랍니다.

 남이 가는 길 보지 마세요. 잘못하면 `너나 잘해`라고 욕을 먹습니다. 마지막 물음에 대한 답은 다음 기회에 해드리지요.


     홍성남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02-776-8405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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