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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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나] 233. 과거사는 어떻게?

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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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제 남편은 성실하고 아주 꼼꼼한 사람입니다. 저희 형제자매들은 모두 덜렁대는 데다 사고를 많이 쳐서 남편감으로 정반대되는 사람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남편의 그런 모습이 답답해 보이는 데다, 처음 봤을 때는 알지 못했던 성격을 보게 돼 참 힘이 듭니다. 남편은 자신이 과거에 잘못한 것을 잊지 못하고 자주 우울해합니다. 이미 지난 일이건만 기분이 안 좋거나 혹은 일이 잘 안 풀리면 과거로 돌아가 버리는 듯합니다. 달래도 보고 "다 잊고 살라"고 말도 해봤지만, 툭하면 과거로 돌아가는 남편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A. 남편이 과거사에 매달리는 것은 비단 남편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일을 잊지 못하고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힘들어하고 괴로워합니다. 왜 그런 것인가? 심리학자인 쿤다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과거사에 대해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고 글을 쓰라고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거의 대부분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미래 이야기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술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과거 지향적 인지구조를 가지고 산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한 것입니다.

 우리는 노인들만 과거의 일을 왈가왈부하고 과거 속에서 산다고 빈정대지만,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이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삽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과거 때문에 가끔은 우울해하고 힘들어합니다. 사람의 인지구조가 과거지향적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과거에 매달리는 것은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거나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과거의 기억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본 심리학자 이토 아키라는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잊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과거를 아무리 생각해봤자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성가들 역시 "과거사는 이미 지나간 것이니 생각하지 말라"고 권유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들은 흡인력이 강해 사람들의 자아를 좀처럼 놓아주질 않습니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을 죽음의 길로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따라서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려고 할 때 단호한 의지로 그 생각의 뿌리를 잘라버려야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희망찬 앞날의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은 기분이 좋으면 과거 안 좋은 기억들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앞날에 자신이 성공한 모습을 그리며 미래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노라면, 마음의 힘이 생겨 여간해서는 과거의 망령들에 잡히지 않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과거를 생각하더라도 즐겁고 좋은 기억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지 않은 추억이나 행복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굳이 안 좋은 기억을 떠올려서 마음 상할 필요 없이 좋은 기억만 떠올려서 자기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간혹 이렇게 설명해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가? 자기 마음 안의 재판관 즉, 초자아와 도덕적 자아가 지나치게 강해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양심은 사람 마음 안에 재판관이 존재하게 합니다. 즉, 자기행위에 대해 스스로 재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리적 재판관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용서가 없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대개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 밑에서 용서받은 기억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이런 심리적 부작용을 가지고 사는데, 이렇게 엄격한 내적 재판관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용서받지 못한 죄책감이, 그 사람의 영혼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통당하는 형벌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과거를 잊으라고 해도 잊지 못하고, 스스로 형벌의 틀을 뒤집어쓰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누누이 용서의 미학에 대한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루카복음 24장 36절은 주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만나는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제자들이 가진 과거의 일들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시려 그러신 것입니다. 주님 승천 후 일에 대해 루카 복음사가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 24,52-53).

 용서가 그들의 아픈 과거 기억을 치유한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님과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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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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