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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26) 정의와 평화로서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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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인격적이고 개인적(personal)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이다. 성경의 구원은 인간이 어떻게 사회, 민족,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사는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달리 말해 구원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넓은 의미에서 구원은 정치적(political)이다.

사실 오늘날 많은 경우에 정치(politics)를 당파성(partisanship), 추잡한 일(nastiness)이나 뒤가 구린 일(shadiness) 혹은 사리사욕(self-interest)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는 어원적으로 그리스어의 폴리스(polis), 곧 도시와 관련된다. 정치는 도시를 형성하는 것, 즉 인간이 더불어 사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경의 구원은 정치적이다. 구원의 정치적 차원은 이집트 탈출 이야기, 예언자들과 예수님, 그리고 사도 바오로에게서도 중심을 이룬다. 폭넓은 구원의 정치적 의미가 가지는 두 가지 초점은 바로 정의와 평화이다.

첫째, 구원은 불의로부터의 정의이다. 사실 성경은 오늘날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정의의 문제인 민주주의, 인종차별주의, 인권, 성 평등, 환경 등을 다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경이 주목하는 정의는 일차적으로 경제적 정의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세계는 집단적인 경제적 불의라는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의 지배 엘리트는 사회적 부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었고 인구의 90는 가난하게 살았다. 성경은 힘 있고 부유한 엘리트들이 사리사욕에 맞게 세계를 구조화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즉 경제적 불의는 제도화된 가난과 궁핍을 초래한다. 그래서 경제적 정의를 위한 성경의 열정은 인간 삶에 필수적인 것들인 땅, 식량, 생존을 위한 물질적 토대와 관련된다. 사회 체제는 모든 이가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경제적 불의를 구조화하는 파라오, 헤로데, 로마 황제는 현실적으로 여전히 계속 존재한다. 인간은 그들로부터, 이 불의로부터 구원되어야 한다.

둘째, 구원은 폭력으로부터의 평화이다. 성경의 평화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마음의 평화나 가까운 관계 안에 사는 다른 사람들, 곧 가족, 이웃, 동료와의 평화를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의 평화는 폭력의 끝이고 전쟁의 종식을 의미한다. 제도화된 가난인 경제적 불의와 함께 제도화된 폭력은 또 다른 재앙이다. 이것은 엄청난 고통을 초래한다. 성경의 시대에서 지배 엘리트들은 폭력을 사용한다. 그들은 땅과 부를 얻기 위해 다른 나라의 지배 엘리트에 대하여 폭력적인 전쟁을 일으킨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 사람들은 이 전쟁에서 아무런 이해관계를 가지지 못한다. 가난한 민중은 전쟁을 위해 과도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징병, 가축 약탈, 농작물 황폐, 기근의 고통을 당하며, 침략자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학살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경은 마음의 평화나 개인적 관계에서의 비폭력뿐 아니라 전쟁의 종식으로서의 평화를 말한다. “수많은 민족이 모여 오며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올라가자.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수많은 백성 사이의 시비를 가리시고 멀리 떨어진 강한 민족들의 잘잘못을 밝혀 주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미카 4,2-3) 한편 예수님이 사셨던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에서 황제는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구원자로 불렸다. 그런데 황제는 군사적 정복을 통해 평화를 가져온다. 제국의 평화는 제국의 정책에 대하여 저항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은 정의를 통한 평화를 제시한다.

정의와 평화로서의 구원은 하느님의 꿈이요 열정이다. 그것은 변화된 정의와 평화의 세계이다. 여기에 구원의 정치적 의미가 있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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