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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 신부의 생태영성으로 보는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45) 풀뿌리 사회 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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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이야기(story)에는 다양한 사회 계층에 속하는 등장인물들(characters)이 망라되어 있다. 사회 계층의 상층부에는 예루살렘의 귀족들과 같은 지배 엘리트들이 있었는데, 이들에 종사하는 이들로는 백인대장, 군인들, 세리들이 있었다. 주민의 대부분을 이루는 일반 민중에는 시골 농부, 어부, 기술자들이 포함되었다. 사회 계층의 사다리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는 가난한 이와 사회에서 내쫓긴 이들이 있었다.

복음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사회적 신분은 예수님 당시의 사회적 세계(social world)를 이해하고 그분의 사명에서 우선적인 것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수님은 민중의 한 사람이셨다. 그분은 엘리트 가운데에서도 제자들과 동조자들을 가지고 계셨다.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루카 8,3)는 갈릴래아의 귀족이었고,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마르 15,42-47 병행)과 니코데모(요한 3,1-21 7,50-52 19,38-42)는 둘 다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시의 지배 엘리트들에 대하여 비판적이셨다. 그리고 그분은 사회의 구조적 변혁을 호소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은 이방인 억압자들에 대한 폭력적 반란을 선동하지 않으셨고 유다 사회를 하향식으로(from top down) 개혁하기 위한 청사진을 입안하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기존의 지배 엘리트를 다른 지배 엘리트로 바꾸려 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풀뿌리(grassroots)에서 사회 변혁을 위해 일하셨다. 그분이 시작하신 이 운동의 핵심인 첫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들이었다.

예수님과 그분을 뒤따르는 떠돌이(itinerant) 제자들은 가난한 이, 곧 빈곤한 이들의 삶의 방식과 신분을 자신들의 것으로 채택하였다. 그들에게는 상시적인 일정한 거주지가 없었고 생계를 위한 소득이 없었다. 가난한 이들을 치유하시고 포용하시는 예수님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분이셨고, 그분은 그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셨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밑바닥에 있는 가난하고 사회로부터 내쫓긴 이들, 무시당하고 경멸당하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가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한 이들의 것이다. 예수님의 행복선언 중 루카의 버전에 따르면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이에 반해 마태오의 버전에 따르면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마태오는 루카의 ‘가난한 이’를 ‘마음이 가난한 이’, 더 정확하게는 ‘영으로 가난한 이’로 확장한다.

그러나 이 확장이 ‘가난한 이’에서 사회-경제적 의미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확장은 가난을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연결시키는 유다적 전통에 부합한다. 즉 가난한 이는 하느님에게 의존하는 사람이고 부자는 자신에게 만족하고 하느님에 대해 교만한 사람을 가리키는 셈이다.

종교적 세계관이 인정되는 이러한 맥락에서 마태오는 ‘영으로 가난한 이’라는 표현에서 물질적인 처지와 종교적인 태도를 명시적으로 결합시킨다. 즉 하느님 나라의 본보기 구성원인 가난한 이는 사회-경제적 신분과 자원의 결핍에서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관련이 없는 사회 변혁을 생각하지 않으셨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하느님을 배제한 인간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사회를 변혁시키는 길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즉 하느님을 끝까지 신뢰할만한 분으로, 한없이 관대하셔서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분으로, 그리고 온 피조물이 온전히 의존할 분으로 아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는 그분의 관대함(generosity)을 믿게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관대한 나눔을 가능하게 한다. 이 신뢰는 사치가 아닌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고 부의 축적이 아닌 매일의 삶을 돌보시고 베풀어주시기를 청하는 가난한 이의 태도이다. 이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본보기 구성원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 풀뿌리에서 정의와 평화의 길, 사회 변혁의 길을 가르치셨고 실천하셨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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