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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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낳으신 분을 사랑하는 것

[미카엘의 순례일기] (8)개신교 신자와의 성모성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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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주고리예의 발현 산에 오를 때 순례자들은 자발적으로 맨발로 오르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오면서, 특별한 경우를 가끔 맞닥뜨립니다. 그중 하나는 개신교 신자 두 분이 포함된 순례단을 이끌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다니는 교회의 교육분과장이셨는데, 가톨릭의 전통적인 기도 방법을 배워보자며 목사님께서 성당의 기도 모임에 참여해보라고 권하셨고, 지도 신부님의 배려 아래 수개월째 모임을 지속하던 중 모임에서 순례를 모집한다는 말에 친구분과 둘이서 등록하셨던 것입니다.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두 분은 금세 순례단에 녹아들었습니다. 몰랐던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역사에 감탄하셨고,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순례 도중 저와 자매님은 작은 난관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메주고리예’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발칸반도에 위치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남쪽으로 약 120㎞ 떨어진 곳에 자리한 메주고리예는 ’산과 산 사이’를 뜻하는 이름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지만, 매년 약 100만 명의 신자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1981년 6월 여섯 명의 아이들이 성모 발현을 목격한 이래 현재까지도 발현이 지속되고 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교황청은 2010년 조사단을 파견했으나 아직 발현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순례를 허용한 결정을 성모 발현의 진실성에 대한 인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순례를 준비하는 성직자들은 메주고리예로의 순례가 교리적 측면에서 혼란과 모호함을 촉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이곳의 순례를 허락하신 바 있습니다.

순례단은 메주고리예에 이틀간 머물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던 도중 제 방에 그 자매님과 친구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자매님은 그간 진행했던 기도 모임과 이번 순례 덕분에 가톨릭에 대해 정말 귀중한 배움을 얻었다며 먼저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하지만 성모 발현까지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모두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이틀 동안은 둘이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제안하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많은 고민이 느껴졌지만, 인솔자로서 망설여지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이실지 이해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지요. 그런데 우리가 체험하는 한없이 인자하시며 사랑이 넘치시는 하느님은 오히려 어머니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 않나요? 앞으로의 이틀을 성모 마리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성을 묵상하는 시간으로 생각해주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긴 이야기 끝에 두 분은 생각해보겠다며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강요할 수는 없었기에 저는 밤새 두 분의 결정을 궁금해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자매님께서는 저를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고, 일정 내내 그랬듯 밝은 얼굴로 기쁘게 순례에 참여하셨습니다.

발칸반도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는 배를 탔습니다. 아드리아해를 가로지르는 이 뱃길은 저녁에 시작해 새벽에 끝이 납니다. 순례의 여정도 끝에 다다라, 우리는 선상 위에 둘러앉아 한 명씩 생각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자매님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고요한 밤바다의 파도 소리 너머로 자매님이 입을 여셨습니다.

“저는 평생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해왔어요. 그러나 이번 순례를 통해 제가 얼마나 편협하게 살아왔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미카엘씨의 말대로, 지난 이틀간 모성의 하느님과 마리아의 존재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았어요.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듯, 주님을 낳으신 분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요. 또한, 그분이 한없이 깊은 신앙과 겸손을 가진 분이시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저의 교회로 돌아가 다른 이들과 이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치부했던 시간을 반성하고, 더욱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겁니다. 여러분이 순례 동안 저에게 붙여주신 세례명은 ‘스테파니아’였지요. 비록 이제 다시는 불리지 못할 이름이지만, 마음속에 언제나 간직하고 살아가겠습니다. 모두에게, 그리고 이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매님께서는 말씀을 끝내고 눈물을 훔치셨고, 순례단은 모두 자매님과 사랑 어린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체험한, 오래도록 잊지 못할 머나먼 바다 위에서의 하룻밤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디모 2,4)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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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2-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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