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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8. 흙에서 왔으니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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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흙길을 걷다 보면 코에 어려 오는 익숙한 냄새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두엄이 범벅된 검고 부드러운 흙이 떠오르는 냄새를 느낄 때는 “음~ 고향의 냄새”라고 너스레 떨던 오랜 친구들도 떠오릅니다. 흙이라는 말은 왠지 진실한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딛는 걸음을 의심 없이 맡길 수 있는 토대이면서 수고한 만큼 그 이상 결실을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이 들어있는 정직함과 신뢰의 상징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우리는 흙 위에서 뛰어놀며 성장했고 그곳에서 자란 작물과 가축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지금의 나로 사는 것이네요. 그리고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가겠지요. ‘내 죽으면 고향 뒷동산의 한 줌 흙이 되면 그뿐 / 그곳이 내 태어나기 이전의 보금자리인 것을….’ 어느 시인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재의 수요일마다 우리는 창세기 3장 19절의 말씀대로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라”는 말씀을 재와 함께 받습니다. 이것은 흙의 먼지로 사람을 만드신 것(창세 2,7)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겠지요.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같은 날에 땅에게 명령하시어(창세 1,24) 집짐승, 들짐승들의 모든 종을 생겨나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땅은 하느님 말씀에 따라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고 짐승과 인간을 생겨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우리가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다고 통탄하십니다.(「찬미받으소서」 2항) 이 말씀은 인간은 보잘것없는 존재이니 겸손해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모든 창조물이 흙에서 나와 같은 본질을 갖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흙을 통해서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그리고 모든 광물까지 같은 본질을 갖는 창조물로 존재하는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생명이 출발하는 곳이자 젖줄이며 다시 돌아갈 회귀처로서의 흙에 인간의 의지와 욕망이 개입되는 순간 ‘흙’은 몇 평 몇 평의 ‘땅’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내 땅으로 물을 대고(我田引水), 경계를 긋고, 사고팔고, 투기를 감행하며, 흙을 욕망의 척도로 만들어 타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흙은 더는 생명의 순환이 일어나는 흙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제 흙이 아니라 땅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생업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몇 평에 얼마로 계산되는 묘지나 납골 시설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씁쓸해집니다.

구약의 선지자 요엘은 가뭄과 메뚜기 떼의 재앙으로 황폐해진 땅(요엘 1장)이 백성들의 죄로 인한 하느님의 벌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어 하느님께로 돌아올 것을 요청합니다.(요엘 2,13) 오늘날의 생태적 재앙에 대하여 영적 태도에서 출발하는 ‘생태적 회개’를 요청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흙의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는 재의 수요일이지만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이 자신의 책임감을 잊지 않는 지구를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진정한 의지는 땅과 백성을 벌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서 구원하시려는 것(요엘 2,18-27)에서 희망을 품습니다. 내가 사는 이 땅은 저주와 타락의 장소로만 머무를 곳이 아니라, 하느님 구원의 완성에 이르러 성스러움으로 가득 채워질 하느님의 현존 장소라는 생각을 하니 내가 활동하는 모든 장소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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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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