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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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현존 의식은 곧 참 자아를 찾는 것과 같아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49. 하느님 현존 의식과 주님의 영을 간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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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성인이 말하고 있는 ‘하느님 현존 의식’은 ‘자아의식’과 다르지 않다. 사진은 영화 ‘나자렛 예수’의 한 장면으로 예수님의 치유로 말을 하게 된 벙어리가 기뻐하고 있다.



11. 하느님 현존 의식과 주님의 영을 간직함 - 의식함과 자유

성 프란치스코가 「권고」 27번에서 말하고 있는 ‘하느님 현존 의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하느님 현존 의식’이 결국은 ‘자아의식’과 다르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다섯 번째 구절을 보자. “자기 집을 지키기 위하여 주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는 곳에 원수가 침입할 틈이 없습니다.”

이 내용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카 복음 11장 14-22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서 악마를 내쫓으시는데, 그 악마는 벙어리 악마였다. 악마에 대한 표현 중 하나는 바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악마의 표시는 말이 없고 통교가 없으며 선물 의식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능력)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근본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은 성령과 더불어 당신의 집, 즉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차지하고 지키시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성 삼위의 내재하시는 현존이다. 이렇게 성령에 의해 차지된 집에는 다른 주인을 위한 방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 집을 고쳐다오!”라는 프란치스코에게 한 예수님의 당부 말씀은 “나의 현존을 인식해다오!” 혹은 “내가 현존하는 그대의 참 자아를 인식해다오!”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11,24-28에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집을 청소하고 말끔히 정리해 놓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말씀에서의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중요하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하느님 은총에 의한 선물로 여기지 않고, 우리의 것이라고 여겨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을 꾸미고 아름답게 정돈하여 다른 이들에게 자기를 잘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이 모든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 하는 우리 에고(ego)의 모습을 비유한 말씀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착각과 기만이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다. 집을 잘 정돈해 놓는다는 것 자체는 언뜻 보기에 긍정적이고 괜찮아 보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은근하게 도사리고 있는 문제는 그 집에 집을 지켜줄 주인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 그 더러운 악령이 가서 더 흉악한 악령들을 데리고 와서 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빈집이 있구나.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이 깨끗하게 잘 준비되어 있어! 자, 그러니 우리가 들어가 우리 맘대로 살아보자!” 우리가 만일 그 집의 주인이고 그 모든 것이 내 노력으로 이룬 것으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할 일이란 집을 잘 청소하고 정리 정돈하여 완벽하게 만들고자 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만일 이 일만을 한다면 우리는 유혹과 악마를 위해 집을 준비하는 셈이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유하려 하는 자만심’이다.

이 에고의 자만심은 하느님을 제쳐 놓고 우리 자신의 이상과 노력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내 것으로 취하려 한다. 그러나 실상은 집주인이요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물론이고, 그분이 주신 순수한 선물들을 인식하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임무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이것이 ‘참 자아의 의미’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영성가가 말하기를 “하느님을 찾는 것이 바로 자신, 즉 참 자아를 찾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에 나온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진리, 즉 하느님을 오랫동안 찾아 헤매다가 찾고는 외친 유명한 말을 우리는 안다. “늦게야, 임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삽나이다.” 이 말은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토록 오랫동안 하느님을 추구하다 하느님을 발견하면서 자신 안에 이미 거하고 계신 하느님을 발견하게 된 것이고, 그 하느님이 자신과 일치하고자 하시는 관계성의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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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7-0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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