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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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하늘에서 은혜로이 내리는 주님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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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이 왜 하느님의 말씀인지 깨닫게 됩니다. 온통 하느님의 생각일 수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내용들이 가득하니, 도무지 인간의 생각을 넘어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는 우리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힘이 있는데요. 하느님의 시선과 새로운 통찰력으로 땅의 모든 변화에 대처하는 지혜를 선물 받게 됩니다. 특히 요한복음에는 주님과의 대화 장면에 숱한 말씀의 심지가 담겨 있기에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지요. 하지만 오늘은 예수님과 이스라엘인들의 대화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토록 혼신을 다해서 주님을 찾았던 열성에 비할 때, 그들의 속마음이 너무나 허술한 것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 실행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게 훤히 들여다보이니까요.

이렇게 따지니 오늘 독서가 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도 딱하기만 한데요. 어느새 하느님의 은혜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하느님을 원망하기에 급급하니 답답합니다. 이것도 불만이고 저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며 불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인해서 노예생활에서 벗어난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진정한 자유를 놓치고 있으니, 갑갑합니다. 주님께 선택된 백성의 영예로움을 잃고 하느님 백성의 거룩한 자존심을 버린 그들의 모습이 초라하고 가엽기도 했는데요. 결국 진리이신 주님을 배척하는 결말에 이를 것을 알고 있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상황을 전하는 성경의 문장에 마음이 쿵쾅댔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느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던 순간, 모세는 간이 콩알만큼 쪼그라들었을 것만 같았던 것이지요. ‘이제는 다 죽었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도 같았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배은망덕한 그들의 행태는 하느님께서 분노를 터뜨리시는 것이 백 번 천 번 마땅하다 여겨졌을 테니까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전혀 상상 밖의 말씀을 내리십니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것이라는 따뜻하기 이를 데 없는 약속을 선포하십니다. 하느님만이 베풀 수 있는 이 놀라운 은혜에 모세는 말문이 막혀서 입이 떠억 벌어졌을 것이라 싶습니다.

어쩌면 그날 주님을 애타게 찾아 헤매다 주님을 만났던 이스라엘 군중들이 주님의 진심을 외면했던 사건을 기록하던 사도 요한의 손이 가볍게 떨렸을 것도 같았는데요. 주님의 진리에 청맹과니처럼 따로 놀던 그들이 결국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기록해야 했던 현실이 너무 슬펐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그날 그들은 혼신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낸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밤새 예수님을 찾기 위한 시간도 수고도 전혀 아깝지 않고 오히려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물론 이제 곧 틀림없이 배부르게 빵을 먹고, 맛나는 생선을 먹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제일 기분 좋았겠지요. 때문일까요? 그들은 예수님께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순수한 질문을 드리며 다가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답변에 순식간에 심사가 뒤틀려버립니다. 이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라느니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라며 꼬치꼬치 따지듯 예수님을 들볶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를 믿게 하려면 먼저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처리해주어야 마땅하다는 뻔뻔한 모습입니다. 이야말로 험한 광야에서 밤낮으로 지켜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고작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작정하는 못된 인간의 심사에 빗대며 툴툴대고 반항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똑 닮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진리로 답하시며 그들의 무지를 일깨워주려 애쓰시는 주님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저는 그날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불평하는 소리”마저 끌어안으시는 분, 당신의 아버지를 기억하셨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지금 당장, 시시때때, 일일이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으며 오래오래 참으시는 아버지의 지대한 사랑을 아버지와 똑같이 행하기 위해서 우리 예수님, 무척이나 애를 쓰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세상이 혼란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모두의 일상이 좁아지고 짧아지고 불편해졌습니다. 그만큼 우울해지고 속이 상할 여지가 큽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의 기도는 그날 주님을 열심히 쫓았던 군중들과 달라야 하리라 싶습니다. 무엇 때문이냐고 캐묻고, 왜라고 따지며 주님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편이 되어드리면 좋겠습니다. 때문에 저는 오늘 “주님 안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니,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힘든 세상에서 함께 아파하시며 변치 않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고뇌하고 계신 주님의 성심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렇게 언제나 어느 때나 당신의 은총을 “비처럼 내려” 채워주고 계신 하느님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주십시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모두 좋고 선하십니다.” 아멘.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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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7-2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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