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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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세상의 빵과 영원한 생명의 빵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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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수도회 입회했던 지원자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어찌 그리 빵이 맛있었는지. 요즘은 계란 프라이 하나에 식빵 한 조각이면 아침 끝인데, 그때는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몇 개면 양이 찰까 한번 실험을 해봤습니다. 다섯 개, 여섯 개, 열 개, 마침내 길고도 긴 식빵 한 줄이 다 사라지더군요.

세상의 빵이 지닌 특징이 있습니다. 늘 부족해보입니다.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늘 뭔가 양이 차지 않습니다. 한번 배부르게 먹었다고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서 너 시간 지나면 또 다른 빵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합니다. 결국 세상의 빵은 이렇게 유한합니다. 세상의 음식은 우선 우리들의 미각을 자극하지만 먹는 순간 그때뿐입니다. 돌아서면 그걸로 끝입니다. 인간의 입이란 것이 간사해서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잘하는 집, 더 끝내주는 집을 찾아가게 합니다.

세속적인 것들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우선 우리 눈을 현혹시킵니다. 우리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방울 같다는 것입니다. 신기루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생명의 빵,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피를 양식으로 제공해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는 성찬례 제정을 통해 우리에게 진수성찬 한 상을 차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밥상에 올라온 음식들의 재료가 예수님 당신의 몸입니다. 당신의 피요 당신의 살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마디 그대로 해석해서 초대교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인육을 먹는 식인종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 심오해서 그런지 백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고 소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다 진지하게 묵상해봐야겠습니다.



■ 납득하기 힘든 성체성사의 신비 앞에서

한 의심 많은 신자가 영성이 깊은 사제를 찾아와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놀림감으로 삼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거 완전 거짓부렁이죠?” 그러자 사제가 진지하게 응수했습니다. “그건 일도 아니랍니다. 당신도 당신이 섭취한 음식을 살과 피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잘 변화시키는 마당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똑같은 일을 못하실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남자는 순순히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그토록 작은 면병 속으로 쏙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사제의 대답은 명품이었습니다. “당신 앞에 펼쳐진 광활한 대자연의 풍경이 당신의 단추 구멍만한 눈 속으로 쏙 들어가는데. 어찌 그게 불가능하겠습니까?” 그래도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널린 수많은 성당 감실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까?” 사제는 작은 손거울을 하나 가져와 그에게 들여다보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손거울을 바닥에 던져 깨트려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 의심 많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하나뿐이지만 이 깨진 거울 조각마다 당신의 얼굴이 동시에 비치고 있는 것, 안보이시나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생명의 빵’과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전혀 납득하기 힘든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좀 더 사랑하면 이해가 됩니다. 좀 더 마음을 정화시키면 이해가 가능합니다. 동료들과 이웃들을 향해 좀 더 나누고 헌신하고 봉사하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내어주신 몸과 피를 우리는 생명의 빵, 생명의 피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성체와 성혈이 ‘정말로’ 생명의 빵, 생명의 피로 변화되는 기적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듯이 우리도 똑같이 우리의 몸과 피로 이웃들에게 밥상을 차려줄 때입니다. 우리가 이웃들을 위해 봉사할 때, 우리가 이웃들에게 헌신할 때, 우리가 이웃들을 사심 없이 사랑할 때, 우리가 받아 모시는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은 참 하느님의 몸과 피로 변화될 것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마음에서 이웃들의 굶주림 앞에 나 몰라라 할 때, 슬퍼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우리의 식탁에 초대하지 않을 때,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을 때,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슬퍼하실 것입니다. 빵은 이웃들을 위해 쪼개어지고 나누어지고 그들의 손에 일일이 건네질 때 참된 성체로 변화됩니다. 쪼개어지지 않는 빵은 참된 빵이 아닙니다. 이웃들과 나누지 못한 음식은 참된 음식이 아닙니다. 쪼갬과 나눔을 통해 빵은 거룩한 주님의 몸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이웃들을 위해 쪼개어지고 나누어진 우리의 삶은 거룩한 주님의 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영하는 생명의 빵인 성체는 세상의 음식들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빵입니다. 우리가 매일 영하는 생명의 피인 성혈은 동네 슈퍼마켓 냉장고 안의 음료수와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음료입니다. 성체와 성혈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만드는 영약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훨훨 건너갈 수 있게 하는 금빛 날개입니다.

순교를 목전에 두었던 이냐시오 성인의 증언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세상의 목표도 세상의 왕국도 제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이 세상 끝까지 다스리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밀이니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양승국 신부(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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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7-27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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