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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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사랑에 빠지다

이주영 수녀(요한바오로2세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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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 어린이들과 하루를 보내는 어린이집에 `으뜸 시녀`로 근무하고 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내게 문득 사랑이 찾아왔다.
 요즘 무의식중에 "돌아와 그대~"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지난 유행가이지만 사랑에 빠진(?) 중년의 수도자 마음 같다. 내 사랑 주인공은 발달 지연을 보이는 네 살배기 소희(가명)다. 웃음을 머금은 소희의 새까만 큰 눈망울과 악을 쓰며 우는 입술, 인정사정없이 발을 구르며 우는 것마저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다. 언제나 왼손 엄지손가락을 빨며 오른손에는 꼬장꼬장 낡아빠진 "음매에~" 소 인형을 잠시도 놓지 않는 귀차니스트이며 교실의 무법자다. 소희는 애착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엄마 보살핌을 받지 못해 발달에 문제가 생겨 우리 어린이집에 다닌다. 처음 몇 달은 엄마와의 애착 형성이 시급해 교사와 치료사 모두 합심해 애를 썼다. 소희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긍정적 친근감을 형성하도록 노력했다.
 시간이 갈수록 소희는 적응했지만 밥을 먹지 않았다. 엄마 품에 안겨 손가락을 빠는 등 문제 행동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아이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엄마의 과잉보호로 제대로 된 교육적 접근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당분간 엄마와 떨어져 교육을 해야하니 아이 혼자만 어린이집에 보내달라고 어머니에게 말한 것이 내 사랑의 시작이다.
 소희는 바닥에 누워 손가락을 빨고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자기만의 세계에서 똬리를 튼다. 그 아이에게 교실에 있는 친구와 교사들은 모두 화성인이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의 눈총을 피하며 장독대 뒤에 숨어 엄지손가락을 빨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마음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외로움을 달래는 도피처였다. 그때 나는 세상으로 나가는 방법을 잘 몰랐다.
 "아~ 소희야, 그러면 안 돼! 소희야 앉아, 손가락 빼!"를 반복하며 단호하고 거침없이 아이의 세계로 뛰어들고 말았다. 역시 소희는 악을 쓰며 울고 발로 차고 바닥에 눕고 깨물기를 반복했다. 온종일 몸이 고단했지만 꿋꿋하게 흐트러짐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그 아이의 세계를 휘저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울고 반항하면서도 지시에 응하는 기미가 보이고 말귀를 알아듣고 있다는 느낌이 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가슴이 뛰었다. `바로 이거야. 넌 할 수 있었던 아이야! 이젠 됐어, 힘들지? 그래 내가 함께할게.`
 하루 종일 소희 생각에 가슴이 설?㈃?. `무얼 해줄까? 무슨 놀이를 좋아할까?` 동요를 들으면서 악기를 두드리는 소희가 해맑게 웃는다. 그리고 찾았다. 우리가 함께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창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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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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