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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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에그! 겨우 새우깡 한 개

이주영 수녀(요한바오로2세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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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장애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느낀다. 풋 열정으로 시작한 소임 초기에는 아이들의 느린 변화에 `스파크`가 오는 날이면 아이가 드디어 해냈다는 희열과 생명에 대한 감격으로 하루하루 고된 잔치를 이어갈 수 있어 좋았다.
 인생살이에도 깊고 얕은 굴곡이 있듯 우리 아이들이 삶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는 함께하는 이들의 사랑과 좌절, 묵묵한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수도생활의 어둔 밤처럼…. 그 고독은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힐 때는 `주님, 어떻게 해요?`를 연발하며 주님 앞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내 안의 답답함과 절망감의 소용돌이는 휘몰아치다가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항복하기를 반복한다. 내 작은 반항은 피조물의 한계와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있음을 알게 해준다.
 남들은 내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다. 누군가가 내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꼭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간식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평소와 다른 방법으로 나눠주기 위해 새우깡을 접시에 쏟아붓고서 아이들을 불렀다. 한줄서기가 익숙지 않은 아이들은 교사들 보조를 받으며 새로운 학습에 도전했다. 기대감과 설렘으로 아이들을 지켜봤다. 보통 아이들이었다면 두 손으로 새우깡을 한껏 움켜잡았을 텐데, 우리 아이들은 겨우 달랑 하나를 집어 간식 접시에 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심정이었다.
 `아이들은 수도자로서 덜 영근 나에게 참된 소유와 욕심 없는 마음이 어떤 것임을, 때 묻지 않은 거울이 돼 나를 비춰주고 있지 않은가!` 부끄러웠다. 아이들의 느린 인지 발달은 세상에서 약삭빠르지 않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순수한 거울이었다. 영재, 신동, 달인이 판치는 사회에서 능력으로는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낮은 자리에 머물게 한다.
 나는 지금, 팔에 앉은 모기 한 마리도 쫓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헌혈을 하는 중증의 뇌병변 친구들 속에서 감히 예수님의 순명과 십자가의 죽음을 아직도 배우고 있다. 허공을 휘젓는 아이들의 뒤틀어진 팔을 잡아주면서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다 받아 안으려 두 팔을 벌리시는 예수님의 깊디깊은 사랑을 배우고 있다.
 몸과 마음이 다 커버린 중년 수도자이지만 부지불식간에 자아가 굳어버린 나에게는 여전히 완덕의 길이 너무 멀다. 아직도 우리 아이들처럼 한 발씩, 비틀비틀 그리고 더듬더듬…. 거울과 같은 아이들에게 내 모습을 비춰보면 언젠가는 예수님을 닮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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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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