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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현양 특강]<2> 순교자와 그 후예들- 손삼석 주교(부산교구 총대리)

죽기까지 하느님을 사랑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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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 조선왕조 치하 2차 시복 안건의 제목을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이제 1차 시복대상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은 가까워진 듯합니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회에는 성인이 103위나 있는데, 과연 우리는 그분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안다고는 하지만 극히 단편적일 뿐이니 선조들에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보통은 한꺼번에 여러 성인 성녀가 탄생하는 게 아니고 한 분이 탄생하는데, 한 분이니까 그분의 삶과 행적을 철저히 조사해서 밝혀내고 또 성인전도 펴내 교우들이 그분의 삶과 행적을 본받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103위 성인은 여러 분이어서 자료가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또 파리외방전교회가 주도해 시복시성을 추진했기에 우리가 접근하지 못한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1984년 5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시성을 하셨을 때 감동과 감응은 컸지만 그만큼 우리들의 삶이 따라가지 못한 게 사실이고 지금은 그 감동마저 많이 식었습니다.

 성인과 순교자들의 가족 관계를 봅시다. 정약종(아우구스티노)만 하더라도 큰아들 정철상(가롤로)과 함께 1801년 4월 신유박해 때 순교해 1차 시복대상자가 됐지만, 부인 유조이(체칠리아)와 작은아들 정하상(바오로), 정정혜(엘리사벳)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해 이미 성인 성녀 품에 올라 있습니다. 또 김대건 성인의 증조부인 김진후(비오)나 조부인 김종한(안드레아), 성 최경환(프란치스코)의 부인 이성례(마리아)와 아들 최양업(토마스) 신부, 강완숙(골룸바)과 아들 홍필주(필립보) 등 많은 가족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순교 성인 성녀와 시복 대상자들의 가계도, 즉 신앙 계보는 재밌기도 하지만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처럼 가족 순교자가 많다는 사실은 초기 교회 때부터 신앙 선조들이 가정을 통해 신앙 유산을 전했고, 그 신앙을 통해 먼저 성가정을 이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조선에 천주교회가 들어오고 나서 100여 년간 얼마나 박해가 많았을까요? 크고 작은 박해가 무수히 있었지만 그중 4대 박해가 가장 큰 박해였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가 4대 박해인데 이 가운데서도 신유박해와 병인박해가 가장 규모도 크고 희생도 컸습니다. 이외에 1785년 을사박해와 1791년 신해박해, 1815년 을해박해, 1827년 정해박해 등이 개항 때까지 전국 각지에서 이어졌습니다. 신유박해 순교자 중에서는 1차 시복대상자로 52위가 포함됐고, 기해박해 때에는 70위가 시성됐습니다. 병오박해 때에는 9위가 모두 시성됐고, 병인박해 때는 대략 8000명에서 1만 명이 순교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 중 성인은 24위가 시성됐습니다.

 이분들은 어떻게 순교가 가능했을까요? 한국 교회사 관련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순교 사례는 최소한 2000여 건에 이릅니다. 전체 순교자 수는 일반적으로 5000명에서 1만 명으로 보고 있고, 1만 2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19세기 당시 조선왕조가 파악한 전국 인구가 700만 명 안팎이었던 사실에 비춰보면 이 숫자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닙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 많은 사람을 순교로 이끌었을까요? 저는 우리 순교자들을 순교로 이끈 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이었다고 봅니다. 또 천주를 대군대부(大君大父)로 인식한 조선 교회 신자들은 대군대부께 대충대효(大忠大孝)를 드려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고문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당시 신자들은 예수님 생애와 자신의 고통에 찬 삶을 직접 비교하며 자신이 겪는 삶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자신도 그분을 위해 고통을 당하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해 시대를 살았던 교우들은 특히 순교를 소망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순교의 기회가 닥치면 은혜로 생각하고 순교를 감행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순교자들이 당한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여러모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열심한 교우도 많지만 교우들의 신앙심이 이전 같지는 않습니다. 입으로는 `순교`나 `순교정신`을 떠들지만, 순교자들의 순교정신과 삶은 계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지근한 우리 신앙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려고 목숨까지 내던졌던 순교자들의 정신과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죽기까지 사랑하고 예수님 말씀과 행동을 죽기까지 따라야 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혼탁한 세상에서 올바른 그리스도교 신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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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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