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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 목요특강 지상중계] <4> 그리스도교와 유교

신학과 유학의 접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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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부총장)


유교와 그리스도교를 함께 다루다 보면 하느님과 천(天), 상제를 비교하기도 하고 유교 윤리와 윤리 신학, 예(禮)와 전례학(典禮學)을 비교하기도 한다. 유학과 신학 사이엔 많은 접점이 있다 생각하는데 그 중 세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첫째는 유교의 인간관 중 도덕주의적 인간관이고 둘째는 역사주의적 인간관이다. 셋째는 성리학의 인간 이해다. 도덕적 인간관과 역사적 인간관은 선진 유학의 입장이고 성리학의 인간 이해는 성리학의 입장인데 이 세 개의 틀을 잘 이해하면 유학의 핵심 구조를 알 수 있다.

 유교의 인간관-도덕주의적 인간관

 인간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유학에서는 사람답게 되는 것을 위인(爲人)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인간의 목적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공자는 천생덕어여(天生德於予)라고 해서 하늘이 나에게 덕을 심어줬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답게 되는 것은 자신의 삶을 통해 이 덕을 실현해 내는 것이다.

 많은 유학자들이 성인이 되는 방법에 관해 생각했다.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에서 우리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소개했다. 지불립(志不立), 즉 뜻이 세워져 있지 않고 지불명(知不明), 아는 것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했다. 목표를 세웠으면 그 목표에 관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나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존귀하다`고 말한 바 있다. 성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행부독(行不篤)인데, 이는 행실이 독실하지 않아서, 힘써 행하지 않아서다.

 유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추기급인(推己及人)이다. 먼저 자기를 이루고 남에게 미치는 것이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는데 가정으로 따지면, 우리 집을 먼저 잘 보살피고 그와 똑같은 정성과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학에서 말하는 서(恕) 개념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은 고대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띠고 있는 남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예수님도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이라고 말씀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뜻이다. 결국 서(恕)는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유교의 인간관-역사주의적 인간관

 유교에는 내세나 영혼의 불사불멸에 관한 내용이 없다. 죽으면 혼(魂)은 올라가고 백(魄)은 묻혀 흩어지면 그만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치열하게 수련하고 도덕적으로 살려고 했을까. 그것은 유교의 역사주의적 인간관 때문이다. 유교에서 사람은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사람에게는 근본이 있는데 근본은 아주 넓게 보면 하늘이고 좁게는 조상이다. 개인의 삶은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늘 근본과 관련돼 있다.

 여기에는 여러 정신이 담겨 있는데 우리의 모든 것은 근본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생각과 그것을 잘 가꿔야 하며 다시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효의 시작이다. 효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에서 시작해, 임금을 섬기는 것이 중간 단계고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것이 마지막이다.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효이고 임금을 섬기는 것은 충이다. 이 둘을 통해 삶을 훌륭하게 완성하는 것이 입신이자 효의 완성이다.

 우리 순교자들은 `우리나라를 다스리는 임금뿐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는 임금이 계시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인류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 계시다. 이 세 아버지의 명령이 상충되면 나는 어느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가` 하고 되물었다. 당시 배웠던 충효의 논리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이런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순교까지 했던 것이다.

 성리학의 인간 이해

 성리학의 인간 이해라는 측면에서 성학십도 중 제8도에 해당하는 심학도(心學圖)를 살펴보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심도심(人心道心)인데, 송대 성리학의 수양론 체계를 이루는 하나의 틀이다. 인심과 도심은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이다. 유학에서 수양을 한다는 것은 이 이원론적 존재를 어떻게 자기 삶 안에서 잘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많은 훈련을 통해 내면과 외면이, 말과 행동이, 아는 것과 실천이 하나 되게 하고, 혼자 있거나 여럿이 있거나에 관계없이 똑같이 살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맹자가 마음공부를 가르치면서 알려준 두 가지 길을 말하겠다. 진심지성지천(盡心知性知天)과 존심양성사천(存心養性事天)의 방법이다. 진심은 마음을 다 쏟는 것이다. 이것은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깊은 곳에 들어가는 능력을 키우려면 `진심` 공부를 해야 한다. 존심은 마음을 모아 안으로 들이는 것이다. 이 역시 훈련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어떨 땐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 마음을 모아 들이는 `존심` 공부를 하게 되면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다. 존심은 수양의 방법론이고, 진심은 학문의 방법론이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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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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