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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 목요특강 지상중계]<9> 예수 시대의 문화적 환경과 예수의 문화의식

복음 선포, 그리스도교 문화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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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철 신부(평화방송 평화신문 사장)


  문화는 형이상학적 개념도, 학문적 개념도 아니고 어떤 의미에서 실존적 개념이라 생각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삶의 자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문화는 10년 전, 20년 전 문화와는 분명히 다른 문화다.

 예수님을 말하려면 복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복음을 문화적 관점에서 정리해 보면 현실 문화에 대한 도전, 혹은 문화의 바꿈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복음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의 이야기다. 지금 살아가는 내 실존에 관계되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인물이지만 그분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실존적이고 실재적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내 믿음이 어떠한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2000년 전 예수님의 문화의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 시대는 로마제국의 동방정책으로 이교 문화가 확산되던 시기였고, 그 문화에 직면해 살던 사람들의 문화는 셈족 문화였다. 이미 유다인들은 로마의 지배와 더불어 문화 충돌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로마가 앞세운 이방 문화는 쉽게 말해 그리스 문화다. 그리스 문화는 사람이 중심인 인본주의 문화로, 내가 살면서 필요하기에 신도 만들고 절대자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유다인에게 신은 근본적으로 계시적인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며 신앙은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은총의 결과였다. 이처럼 신관 자체가 이방 문화와 유다 문화가 달랐다.

 유다교 신앙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구원자, 해방자 하느님께 기원을 두고 있지만 긴 세월 동안 신앙의 형태나 관점이 일관되게 정리된 상태는 아니었다. 모두가 율법을 믿었지만 바리사이, 사두가이, 열혈당원, 에세네파 등 다양한 분파가 존재했다. 유다인의 신앙마저도 하나로 통일된 신앙은 아니었다. 성경이 정경으로 공식 선포된 것은 기원후 70년이었다. 성전 파괴의 비극을 눈앞에 두고 구심점이 없어지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생각한 것이 구약성경의 정경화다. 그 이전에는 각 분파들이 각자의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 바오로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선포했던 그 시기는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신이 만들어진 시대였기에 그런 문화에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기존 문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새로운 가치, 그리스도의 가치를 살아가도록 하는 복음은 이방 문화나 셈족 문화에 엄청난 도전이었기에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방 문화와 셈족 문화의 결탁이 새로운 가치를 선포했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수님은 이방 문화와 셈족 문화에 맞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하신 것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신으로부터 얻기 위해서는 신의 마음에 들든지, 신을 흡족하게 하든지 해야 한다. 그 방법이 예식이다. 그리스도교 문화도 똑같다. 하느님이라는 신과 나라는 실존이 있고, 예식(전례)을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인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출발한다. 하느님이 생명을 비롯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셨기에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 응답의 형태로 예식을 하는 것이다. 예식이라는 수단은 똑같지만 그 수단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근본적으로 관점이 다르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기존 문화를 완전히 바꿔야만 생명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복음은 절대적 가치다. 양보할 수 없고 타협의 여지도 없다.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절대 가치다. 예수님은 복음 선포를 통해 당대의 이방 문화에 도전하면서 기존 문화가 왜 잘못됐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분명히 이야기해주셨다. 그것은 사도 바오로도 마찬가지였다.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절대 가치로 삼고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절대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절대 가치가 무엇인지 개념 정립이 돼야 한다. 그리고 나로부터 시작된 복음적 삶이 복음적 행동양식으로 변화될 때 이것이 그리스도교 복음 선포이며 토착화다. 예수님 시대의 문화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형태가 돼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가치를 살아감으로써 그런 삶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줘서 다른 사람도 그 삶을 닮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문화는 만나지 않으면 형성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한 절대 가치로서 복음을 내 삶의 본질로 알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복음을 사는 것이다. 내 삶을 통해 복음적 문화를 전하는 것이 성탄을 앞둔 우리의 자세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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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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