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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34) 배려와 신뢰

수다를 떠는 사이, 예약한 기차는 떠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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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천주교 관련 유배지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 박해가 한창일 때, 천주교를 신봉하다가 체포된 양반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유배를 갔습니다. 바로 그들이 유배를 갔던 곳을 찾아가서 천주교 신앙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의 마음을 묵상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 답사 개념으로 최소 인원인 12명이 가게 되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기차표도 미리 끊어놓고, 그 섬에 들어가는 배편도 미리 알아 놓고, 가는 길에 점심식사를 할 장소 또한 예약을 해 놓았습니다. 또한 유배지에 대한 주변 정보도 그 곳 본당 주임 신부님께 도움을 요청해서 설명을 부탁했고, 미리 숙박 장소도 확인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했습니다.

출발하는 날 아침, 순례 갈 분들은 약속 장소에 한 분 한 분 도착했고, 우리는 가볍게 간식을 먹으며 기차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기차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기차 타는 장소로 갔고, 우리가 탈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면서 서로가 모르는 분들이기에 내가 주도해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 우리가 타야 할 기차가 서서히 출발하였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순례자들에게 기차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기차, 우리가 타야 할 기차인데!”

그러자 순례자 한 분이 말씀하시기를

“신부님, 우리가 탈 기차는 10번 출구로 가야 있는데, 신부님이 8번 출구로 내려가시기에 저는 그리로 가도 되나 했어요!”

아이고! 나는 급히 매표소로 달려가서 손해를 보면서 다음 번 기차표를 다시 끊었고, 기차 시간이 연기되자 계획했던 배 시간도 놓쳐, 할 수 없이 저녁 배를 타고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나의 순간 판단 착오로 모든 계획이 뒤틀렸습니다. 어찌나 미안한 지…….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함께 순례하는 분들은 초면에 서로 어색했는데, 나의 실수를 화젯거리로 깔깔 웃으며 모두가 다 즐거워하였습니다. 또한 원래 계획은 기차 안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는데 배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목포에서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아 편안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배라 바다 위에서 일몰을 보는 행운까지 누렸습니다. 함께 가시는 분들은 배 위에서 일몰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오히려 고마워했습니다. 유배지를 찾아가는 프로그램 계획은 내가 꼼꼼히 짰지만 결과는 하느님이 준비해주신 여유있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일몰을 보며 유배지를 찾아가는 마음 또한 숙연해 지면서 2박 3일 동안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떤 계획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배려라는 것을 새삼 체험했습니다. 그 날, 실수투성이인 나에 대한 주변 분들의 배려가 오히려 친밀감 안에서 은총을 체험하는 시간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배려는 결국 신뢰에서 생깁니다. 깊은 신뢰가 좋은 배려를 가능케 하였습니다. 혹시 인생에 중요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 계획에 대한 세심하고도 완벽한 준비도 좋지만 그 계획 안에 배려가 있고, 신뢰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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