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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베드로 다미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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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드로 다미아니

▨2월 21일: 성 베드로 다미아니(St. Peter Damian)

1007~1071 이탈리아 출생 및 사망 성 베네딕도회 추기경 교회학자.

성 베드로 다미아니 추기경은 교회 개혁가이면서도 덕망있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성 베네딕도수도회에 입회해 은수자로 조용히 살고 싶어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교황은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하고 교황 사절로 임명했습니다.

성인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고아가 됐습니다. 형들이 돌아가며 그를 맡아 키웠는데 그중에 사제였던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른 형의 집에서 지냈을 땐 갖은 구박과 노동에 시달렸는데 신부가 된 형은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며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습니다.

성인은 29세에 성 베네딕도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수도 생활을 하며 신학 공부에 매진했던 그는 철학 역사학 성경학 교부학을 통달하며 교회학자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강론과 가르침을 듣길 원했습니다. 또 수도원장이 된 후 수도자 양성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그가 교회 개혁에 전면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같은 수도회 출신 아빠스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부터입니다. 스테파노 9세 교황은 그를 오스티아교구장으로 임명하고 추기경에 서임하면서 교회에 새 바람을 일으켜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성인은 당시 돈을 내는 이들에게 성직을 팔았던 성직매매 문화를 없애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면서 신자들과 성직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곳임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성직자들에게 청빈한 삶을 당부했습니다. 그 역시 가진 것 전부를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교회 부패 척결과 함께 그는 교황 사절로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분쟁 조정자로 활약했습니다. 성인은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칫 전쟁으로 번질 뻔한 문제들을 평화롭게 해결했습니다. 가톨릭 교회 정통 교리를 수호하고 대립 교황에 대항하는 등 교회 권위를 세우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레오 12세 교황은 1828년 교회를 위한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려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했습니다. 성인의 유해는 현재 이탈리아 파엔차주교좌성당에 안치돼 있습니다.

▨2월 19일: 피아첸차의 콘라드 (St. Conrad of Piacenza 1290~1351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재속 프란치스코회 은수자)

귀족이었던 성인은 자기 대신 방화범 누명을 쓴 한 농부가 사형까지 당한 것을 보고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자신이 불을 낸 것임을 고백하고 전 재산을 처분해 피해보상을 했습니다. 이후 속죄하는 마음으로 로마 전역을 순례한 뒤 시칠리아의 외딴 곳에서 은수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종종 치유 기적을 일으켰고 심금을 울리는 강론으로 많은 이들을 신앙으로 이끌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 중에 숨을 거둔 성인은 1625년 시성됐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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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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