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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75) 시장 냄새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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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주일 날 교구 동창 신부가 새로 주임으로 발령 받은 본당엘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교중 미사를 드리는데 정성껏 준비한 동창 신부의 강론을 들으며 나도 감동 받았습니다. 미사를 드리면서 성당 분위기를 느껴보는데 ‘참 정겹고 따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미사 후 나는 사제관으로 먼저 올라가 동창 신부를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에 사제관으로 온 동창 신부는 ‘미안하다’며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다 늦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알고 있었지요. 사제관 창틈으로 마당을 보니 동창 신부가 신자 분 한 분 한 분에게 정성을 다해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그 장면들을 나는 미소 머금고 보았던 것입니다.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는데 동창 신부는 산책을 하자며 제안했습니다. 따스한 사제관이 좋은 나는 ‘밖에 추울 텐데’ 하면서 내키지는 않는 마음으로 겨울 산책을 따라 나섰습니다. 성당 마당을 지나 정문을 나서는데 날씨는 겨울이지만 어느덧 봄기운이 묻어있는 바람이 우리 주변을 감쌌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동창 신부가 가는 길을 종종걸음으로 따랐습니다. 어느 정도 걸었더니 이내 곧 재래시장이 보였습니다. 순간 나는
“어 재래시장이다. 이 동네 재래시장은 아직 살아 있네. 다행이다.”
그러자 동창 신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틈틈이 걸어서 여기를 와. 그리고 이곳에 와서 오래전부터 이 동네 사람인양 천천히 걸어 다니며 이리저리 기웃거리곤 해. 그러다 살 것 있으면 사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보리차 3 000원어치를 샀고 미숫가루도 5 000원어치 샀어. 그러면서 시장이 터전인 분들의 모습을 보고 1000원 2000원에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도 봐! 그러면서 할인을 빙자한 대형 마트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또한 전자식 계산기와 카드로 십 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찍히는 기계 앞에 서 있는 것보다 호주머니나 지갑에서 동전이 오고 가는 이곳이 훨씬 더 좋더라. 그리고 장사하시는 분들이 기분에 따라 야채 등을 후하게 덤으로 주는 재래시장 풍경은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해 주지. 그러면서 여기 올 때마다 대형 매장에 맞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인심 후한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해.”
“맞는 말이야. 언젠가는 ‘재래시장’이라는 단어도 아련한 추억 저편의 언어가 되겠지!”
“사실 나는 얼마 전에 이곳 본당으로 발령받아 왔잖아. 그래서 평소 우리 본당 신자들의 삶의 흔적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재래시장이라는 생각에 여기를 자주 찾아. 재래시장은 지역 주민들의 먹을거리 터전이잖아. 또한 우리 본당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고 순대랑 떡볶이를 즐겨 먹는 중고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이 재잘거리는 장소고! 또한 청년들과 교사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지나치던 곳이라 혼자 여기에서 우리 신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우리 본당 신자들이 이곳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그냥 그렇게 상상을 하면 재밌더라.”
문득 나를 데리고 재래시장을 걷고 싶었던 동창 신부의 속마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람 냄새’ 나는 그곳에 가서 자기 자신도 그 사람 냄새이고 싶어 하는 동창 신부의 마음! 본당 신자들을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사랑하려는 동창 신부의 고운 마음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던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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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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