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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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73) 걷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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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공소 마당을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을 무렵,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형제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신부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저는 신부님 기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신부님은 어떠세요? 그곳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요? 작년에는 연락 한 번 못 드리고 해서, 올해는 서둘러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이렇게 늦었네요. 뭐가 그리 바쁜지.”

“다들 그렇죠. 아차, 예전에 산티아고 가신다고 하셨는데, 잘 다녀오셨어요?”

“아차, 재작년에 산티아고 갈 때 설렘 반 걱정 반이라, 신부님께 기도해 달라고 졸랐는데 다녀와서는 인사도 못 드렸네요.”

“에이, 괜찮아요.”

“사실, 산티아고 가서는 여러 가지 일이 좀 많았어요.”

“아니 그 좋은 데 가서 무슨 일이?”

“지금 생각해 보면… 음…. 사실 산티아고 가는 순례자를 모집할 때, 저 혼자 신청했거든요. 그러데 막상 가서 보니 15명이 우리 일행인데, 대부분은 부부나 가족, 혹은 지인 등이 함께 온 거예요. 그러니 저만 혼자 아는 사람 없이 14박15일 일정을 걸었어요. 함께 동행한 지도 신부님께선 일정 내내 ‘혼자, 침묵 속에서 걸어야 한다. 그래야 순례 중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을 강조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지도 신부님의 말을 순명하는 것이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14박15일 동안 참 철저하게도 침묵 속에서 걸었구나 싶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들이 있었어요. 오전 내내 우리 일행들이 가야 할 곳까지 걷다보면 점심시간이 되는데요, 그러면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어요. 일행들 대부분이 며칠간 함께 걷다보니 서로 친밀해져서 웃으며 대화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분들이 차 한 잔 마실 거냐고 친절히 물어도, 신부님 말에 순명하느라 그냥 쌩 ? 하고 지나쳤어요. 그리고 혼자 자리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셨어요.”

“아이고, 다른 일행 분들이 형제님을 대할 때에 좀 긴장했겠다.”

“예.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암튼 저는 신부님 말씀에 순명하면서 침묵 중에 걷다보니 마음은 너무나 편안했어요. 진심,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일행들은 저를 무척 불편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와 일행들과의 마음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러다 순례가 끝나고 그렇게 헤어졌어요. 암튼 산티아고 순례는 개인적으로는 좋은 순례였는데, 마음이 너무나 불편했어요. 신부님께선 이런 사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그냥 있는 그대로 생각하면 되죠. 그런데 저였다면 조금은 달리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 같아요. 혼자 걷는 시간엔 진정 하느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침묵을 유지했겠지만, 쉬는 시간에는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과 서로에 대한 마음을 나누면서 길에서 만난 하느님에 관한 체험을 따스한 미소와 정겨운 눈인사 정도로 나누면서 지냈을 것 같은데요. 사실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은 침묵 속에도 있지만, 사람의 따스한 미소 속에도 있잖아요. 걸으면서 하느님을 만나고 쉬면서 하느님을 나누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데, 암튼 저는 그랬을 것 같아요.”

영성의 문제에는 옮고 그름, 좋고 나쁨이 없기에 정답 또한 없습니다. 단지 하느님에 대한 체험이 건강하다면 주변 모든 것을 폭넓게 끌어안게 될 뿐! 걷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그러면서 하느님을 만나기도 하고, 하느님을 만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서 내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그 만남 속에서 다시금 하느님을 발견하기도 하고! 영성 생활 안에서 한 가지 불변의 진리는 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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