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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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89) 웬 호들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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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장터순교성지에 마련된 ‘외양간 경당’ 축복식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 무렵, 일기예보를 보니 축복식 날에는 비 소식이 없고, 바로 다음 날에 비가 온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고창 지역 땅 대부분은 황토흙이라, 농사에는 좋지만 비가 오면 ‘뻘’로 변합니다. 경당 주변도 황토흙이라, 비가 온다면….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코로나19 방역 수칙 관계로 경당에서 이루어지는 축복식엔 주교님 이하 몇 분만 들어갈 수 있고 대부분 교우분들은 황토흙으로 된 야외에서 미사를 봉헌하기에, 비가 오면 정말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날마다 일기예보를 확인했건만, 맙소사! 결국 하루 전날 일기예보에선 축복식 날 비 소식이 떴습니다. 그것도 70 이상의 확률로! 지인분들도 내게 전화나 문자로 ‘어떡해요, 축복식 날 비 소식이 있어서’, ‘신부님이 공사 하느라 정신이 없어 기도를 안 하셨나, 축복식 날 비 온대요’, ‘코로나19로 어렵게 하는 축복식인데 비 때문에 마음 무거우시겠다’ 등등. 애써 태연해 보려고는 했지만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습니다.

‘하느님, 그 수많은 날들 중에 왜 축복식 날에 비를 허락하시나요? 하느님, 여기는 비가 오면 바람도 따라 심하게 불어 비바람을 감당할 수 없는데 하느님, 어쩌시려고 비를 내리시려 하시나요?’ 축복식 준비가 마무리 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정말 비가 올까? 아냐, 비가 안 올 거야! 일기예보가 맞을 텐데. 아냐, 일기예보가 안 맞을 때도 있었어. 일기예보 상으로는 70인데 안 올 수도 있을까! 아냐, 오더라도 새벽에 오거나, 축복식이 오전이니까 오후에 올 수도 있어’ 온갖 생각이 오갔습니다.

축복식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공소에서 7시 미사를 드리는 중에 공소 어르신들에게 당부, 또 당부를 드렸습니다.

“어르신들, 오늘 축복식 날 비가 오면 큰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농번기라 비를 기다리는 농부님들의 기도도 있고. 그러나 축복식에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도 있고. 그러니 어르신들, 축복식을 진행하는 1시간30분 동안만이라도 비가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농부님들 기도보다 우리 기도가 좀 더 간절하다는 것을 하느님께 기도로 알려주세요.”

미사 마치고 공소 어르신들과 인사를 하는데, 어르신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따, 우리 신부님, 믿음이 그리 약하오. 오늘 비 안 온당께. 그리 아시고, 행사나 잘 치르쇼’ 하셨습니다. 위로가 되었습니다. 공소 미사를 마치고, 성지로 가는데 빗방울이 차창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에고, 비가 오기는 오나 보다. 비 오면 오는 대로 해야지, 뭐.’ 그리고 성지에 도착했는데, 날씨는 잔뜩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축복식 5분 전,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고 주교님과 신부님들, 그 밖의 교우분들이 경당 안팎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축복식 미사가 끝나고도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 생각하며 축복식에 참석하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서울에서 오신 분들 말로는 서울에서부터 고창까지 비가 많이 왔는데 여기 성지로 오면서부터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고. 아마도 성지만 비가 오지 않았던 것 같다고.

정말 축복식 날 성지 주변에만 비가 오지 않았고, 흐린 날씨로 인해 오히려 축복식 행사에 가장 적합한 날이 되었습니다. 과학적으로 비가 올 확률 70를 맹신했던 나보다, 좋은 날에는 하느님이 비를 내리지 않으신다는 비과학적인 믿음이 큰 공소 어르신들의 모습이 교차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내 자신이 참말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날따라 우리 어르신들의 우직한 삶의 경륜과 믿음의 경륜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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