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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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77) 상처, 또 다른 하느님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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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있을 과제 심사를 앞두고 직장 업무가 많아지면서 또다시 불안감이 올라왔다. 기한 내 끝낼 수 있을까, 평가를 잘 받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며칠 야근까지 했더니 심신이 피곤하다. 그러다가 하루를 돌아보는 의식 성찰을 하면서 나 자신이 과도하게 긴장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내게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에 머물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주어진 것을 열심히 잘 해내려는 나의 이런 태도는 능력이 없는 내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득한 일종의 생존 방식이었다. 특히 고교 시절 스파르타식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것이 주요했는데, 닭장 속에 갇힌 닭처럼 모든 것이 통제된 채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해야 했다. 내게는 지독히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좋은 성적을 내서 대학에 가는 것만이 그곳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강하게 채찍질하며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고교 졸업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때 밴 태도는 일종의 상처이자 어둠으로 남았다. 매사 주어진 것을 열심히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종종 걱정과 불안감이 올라오곤 했다. 그러나 이냐시오 영성을 사는 지금은 수련을 통해 마음의 흐름을 즉각 살피고 평정심을 찾으려 한다. 예전의 긴장감과 걱정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휩쓸리는 시간은 훨씬 줄었고 짧아졌다.

한때 인생에서 상처와 굴곡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처럼, 상처 없이 자란다면 힘들어하거나 어둠에 휩쓸리는 일도 줄어들고 평온하게 잘 살 것 같았다. 한편에서는 어둠과 상처가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큰데, 하느님께서는 왜 그런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혹시 시련을 통해 인간을 단련시키려고 하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근본적인 답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상황은 하느님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분의 탓도, 그분이 뜻하신 바도 아니었다. 아울러 지금은 내가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지고, 내 힘든 시간 동안 하느님께서 나와 어떻게 함께하셨는지에 대해서도 시선이 가게 되었다. 내가 겪은 고통과 상처 자체는 하느님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대신 그분은 내가 힘들어하는 그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하시면서 깊이 안타까워하시고, 아파하시고, 내가 잘 이겨 내기를 진심으로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는 그걸 몰랐다.

만약 내 상처와 고통, 어둠의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하느님을 찾고, 그분에 대한 간절함이 컸을까 질문하게 된다. 하느님 없이도 나름 만족하고 의미 부여를 하면서 잘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살려고 혼자 아등바등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아픔과 어둠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을 찾고 위로와 치유를 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그분의 사랑과 연민을 맛보고 체험하면서 그분과 함께 나눠 가는 삶이 얼마나 기쁘고 풍성한지,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런 것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상처와 아픔을 통해 말을 거시고, 그분의 사랑으로 초대해 가시는 것 같다.

상처와 어둠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이 있다. 내 상처가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를 잘 알고, 겸손하게 하느님 사랑과 은총을 청하는 사람은 세상의 어둠과 상처에 대해서도 쉽게 단정 짓거나 판단하지 않고, 깊이 살피고 이해하려 하며, 연민하고 품으려 하는 것 같다. 상처와 어둠이 죄로 끝나지 않고 사랑으로 이어지도록 초대하시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김용택, 시 ‘참 좋은 당신’ 중 일부)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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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7-06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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