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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리옹의 성 이레네오(6월 28일)

130/140?~202년, 교회 학자,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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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네오 성인은 당시 로마제국 동쪽인 소아시아(현 터키)의 해안도시 스미르나 출신이다. 스승인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주교를 통해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받았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그가 활동한 2세기 신학자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특히 영지주의(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함)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호교 교부로 손 꼽힙니다.

성인의 출생 연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130~140년도에 태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이때 성 유스티노(Justinus)가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후 언제 어떤 연유로 프랑스의 리옹으로 가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리옹에서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177년 리옹 교회의 특사로 교황 성 엘레우테리오(Eleutherus)를 방문하여 몬타누스파(Montanism) 이단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 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습니다. 성인이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리옹의 주교인 성 포티노(Photinus)가 순교했고, 리옹으로 돌아온 그는 성 포티노를 계승해 리옹의 제2대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 뒤 20여 년간은 다행히 박해가 멈추자 그는 선교 사업에 전념해 리옹 시민의 대부분을 개종시켰다고 합니다.

리옹 지역 복음 선포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프랑스 지방에 널리 퍼진 영지주의 이단과도 피나는 싸움을 전개합니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 저서인 「이단 논박」과 「사도적 선포의 증명」에서 사도들의 전승을 충실히 전해주었고, 그리스도 중심의 수렴 사상을 펼쳤습니다. 또한,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강조하면서 모든 교회는 로마 교회와 일치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성인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한 중재자였습니다. 특히 성 빅토르 1세 교황이 로마와 같은 날짜에 부활 대축일을 지내지 않는 안티오키아 신자들을 파문하자, 동방교회의 전통을 잘 알고 있던 그는 그들이 단순히 고대의 관습을 따른 것이라며 서로의 이해를 강력히 호소해 평화를 보존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유아세례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교부이기도 합니다. 성인은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며, 따라서 어린아이도 모두 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후대의 문헌(투르의 그레고리오 「프랑스의 역사」)에 의하면 성인은 202년경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성인의 적극적인 선교 활동으로 리옹 교구가 번성하고 이단의 기세도 꺾일 무렵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리옹에서 많은 순교자가 나왔고, 이미 고령이었던 성인도 장렬히 순교의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주님에게서 오는 평화’라는 이름의 뜻처럼 성인은 일생을 평화와 일치를 위해 헌신한 목자요 교부로서 영적ㆍ신학적으로 동방과 서방 교회의 그리스도인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1월 21일 교황청 시성성의 의견을 받아들여 동방에서 태어나 서방에서 주교 직무를 수행한 성인에게 ‘일치의 학자’(Doctor unitatis)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교회 학자로 선포했습니다. 동방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8월 23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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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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