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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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 사제 이적, 당혹스러운 교황청

예수회에서 제적된 루프니크 신부, 교황청 공소시효 적용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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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성범죄 피해자와 피해자 보호단체 활동가들이 9월 27일 바티칸 앞에서 가해자들에게 ‘무관용(Zero Tolerance) 원칙’을 적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OSV

성추문에 휩싸여 예수회에서 제적된 뒤 슬로베니아교구로 이적한 마르코 루프니크(68) 신부 문제로 바티칸 안팎이 어수선하다.

루프니크 신부는 바티칸과 유럽에서 예술성을 인정받는 유명한 모자이크 화가다. 바티칸과 루르드 성모 발현지 등 세계 200여 곳에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그의 성추문은 지난해 말 이탈리아 언론 보도와 예수회의 제적 조치로 세상에 밝혀졌다. 예수회는 이미 2018년 관련 제보를 받고 성적 비위 사실을 인지한 후 정직 처분을 내린 상태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30년 가까이 수녀를 비롯한 여성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면서 성학대를 일삼았다. 하지만 성인 성학대에 대한 교회법적 공소시효(20년)가 만료돼 교회법적 엄벌은 물론 이탈리아의 형사적 처벌도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사건 처리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면서 최근까지 입방아에 올랐다. 특히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징계 절차 개시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제재 면하고 슬로베니아로 이적

이런 상황에서 그가 고국인 슬로베니아의 코퍼교구로 이적해 사제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사실이 10월 25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언론들은 그가 로마교구로부터 로마에서의 활동도 허락받은 것을 확인했다. 로마에는 그가 설립한 성미술센터(Centro Aletti)가 있다.

공교롭게도 언론 보도는 교황청이 주교 시노드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뤄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날 시노드 대의원들에게 성직주의의 폐해와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에 대해 연설했다. 교황은 “성직주의는 채찍이자 재앙이며, 주님의 신부인 교회의 얼굴을 더럽히는 세속성의 한 형태”라고 질타했다. 또 “젊은 신부들이 감마렐리에 가서 (값비싼) 수단과 모자, 레이스 달린 전례복을 사는 것은 매우 슬픈 추문”이라고 우려했다. 감마렐리(Gammarelli)는 로마 시내에 있는 전례복 전문점이다.

시노드 참가자들도 그날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했다. 서한에는 “교회는 회심의 정신으로 성학대 피해자들의 말을 경청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구절도 들어 있다.

하지만 그 시간에 시노드홀 밖에서는 그의 이적에 대한 성토가 빗발치고 있었다. 미국 성요셉신학대학 토마스 버그 교수 신부는 SNS를 통해 “교황님, 성직주의는 감마렐리 쇼핑객이 아니라 루프니크 신부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라고 고언했다. 미국 가톨릭통신 OSV의 문화 편집자는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서사적 실패”라고 비판했다.

교황청 공보실은 이틀 뒤 짧은 성명을 통해 “교황이 신앙교리부에 루프니크 신부 사건을 재검토하도록 요청했고,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공소시효를 없애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교황은 지난 9월 신앙교리부의 사건 처리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성학대 피해자 단체들은 공소시효 폐지 결정이 왜 늦게 나왔는지 교황에게 묻고 있다고 영국의 가톨릭 헤럴드가 보도했다.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정의”라는 아일랜드 성학대 피해자 단체의 마리 콜린스 주장도 함께 전했다.



시노드 정신 실천 시험대

교황청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더군다나 교황은 9월 15일 루프니크 신부의 최측근을 개인적으로 만나 면담했다. 사흘 뒤 로마교구는 루프니크 신부의 성미술센터는 운영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교황이 이 사건에 직접 관여했다고 추정할 근거는 없다. 교황은 지난 1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성적 비위에 대해 “그 정도 수준의 예술가가 그러다니 나는 정말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고 통탄했다. 또 신앙교리부 판단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루프니크 신부 사건에 왜 공소시효가 적용됐느냐는 질문에는 “미성년자와 취약한 여성을 제외한 기타 성인이 연관된 성학대 사건에는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대답했다.

교황은 지난 2018년 페루의 한 주교가 성범죄 가해 신부 은폐 혐의로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 그 주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칠레에 급파한 특별 사절이 보내온 보고서를 읽은 뒤 “진실되고 균형 잡힌 정보가 부족해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데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사과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시노드 정신의 실천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노드 대의원들은 제1회기를 마치며 채택한 종합보고서에서 △성학대에 대한 교회의 대응 실패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그들과 동반하기 △공동의 의사 결정 등을 비중 있게 다뤘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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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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