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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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마리아의 향유 / 주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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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을 보다가 마르타와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예수님 일행이 라자로와 마르타 그리고 마리아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라자로는 과거에 예수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려낸 사람이며, 마르타는 그의 누나이고 마리아는 여동생이었다.

마르타는 그들을 대접하기 위한 만찬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바르고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마르타는 이런 동생이 얄미워, 마리아에게 일을 좀 거들라고 말해 달라고 예수님께 떼를 쓴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며 마리아의 편을 드신다.

내가 전에 그 부분을 읽었을 때, 보이지 않게 일이나 하는, 곰 같은 마르타를 동정했다. 마리아를 앞에서 생색이나 내는 여우라고 생각했으며, 마리아를 편드는 예수님이 의아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일까. 예수님의 속마음이 짐작되는 것이었다. 10년 전쯤, 시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다급한 목소리로 하시는 말씀이, 돌봐 주시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그만두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이라, 나도 당혹하여 무엇부터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시장으로 뛰어갔다.

드실 음식부터 마련하여 갖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재료를 장만했다. 한여름에 땀을 뚝뚝 흘리며 준비한 많은 밑반찬과 함께, 당장 끓이기만 하면 되도록 손질을 한 것들을 보내고는 나는 지쳐 떨어지고 말았다.

다음날 뵈러 갔더니 어머니는 내가 준비한 음식들을 잡수시며 애 많이 썼다고 칭찬을 하셨다. 그런데 덧붙이는 말씀이 “나는 네가 음식을 해오기를 바란 것이 아니고, 전화 받는 즉시로 네가 달려와 그냥 내 옆에 있어 주길 바랬는데….” 100% 칭찬이 아니고 약간의 비난이 섞여 있음을 눈치 채고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무더운 날씨에 끙끙거리며 시장을 보고, 뻘뻘 땀을 흘리며 음식을 만들었는데…. 섭섭한 마음이 해일처럼 밀려와 나를 삼키려 들었다.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곁에 있어 드리는 일이야 쉬운 일이지만, 음식을 장만하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이데 저렇게 말씀하시는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섭섭했던 마음은 그 후에도 오래 남아 있었다.

이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는데 섬광같이 번쩍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연마되지 않은 원석 그대로의 젊었던 내가 말이다.

억울하겠다며 동정했던 마르타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육체노동을 했다. 얌체라고 욕했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리며, 그녀의 영혼을 바친다. 똑같이 예수님을 사랑했던 두 자매, 그 둘의 모습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외적인 시중에 비중을 둔 마르타와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조용한 헌신을 하는 마리아. 예수님이 진정 원하셨던 것은 보이는 형식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필요하셨던 것은, 단 한 가지 영혼의 봉헌이었던 것이다.

그날 부엌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했던 나는 마르타였고, 어머니가 필요하셨던 것은 마리아의 향유였을 게다. 나는 드러나는 봉사에 무게를 두었고, 어머니는 따뜻한 마음의 봉사를 받고 싶어 하셨을 게다. 나이를 먹은 탓일까.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혜안이 내게 생긴 것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연아(안젤라) 수필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06-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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