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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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성모당 봉헌 90돌 기획] 성모당의 어제와 오늘(상)/건립 배경과 특징

성모님께 봉헌된 은총. 치유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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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대구대교구청 경내에 우뚝 서 있는 성모당이 10월 13일로 봉헌 90주년을 맞는다. 대구대교구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신앙의 요람으로 자리 잡은 이곳은 연중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11년 교구설정 100주년을 앞둔 대구대교구 역사는 성모당 90년 세월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한마디로 고난과 역경, 애환과 감동의 나날이었다. 본지는 봉헌 90주년을 맞아 성모당의 어제와 오늘을 두차례에 걸쳐 조명한다. 이를 통해 신앙성지로 자리매김한 성모당이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은총의 장소인지를 널리 전하고자 한다.

세 가지 허원

막막했다. 하느님 나라 건설과 이 땅의 복음화에 헌신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이역만리 한국에 첫발을 디뎠건만 모든 상황이 최악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묘안이 떠오르질 않았다. 다만 주님과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과 복음 선포의 열정으로 이 난관을 극복할 수밖에.

1911년 6월 26일 신설 남방교구의 첫 주교로 대구에 부임한 안세화 주교의 심정이 이러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교구로서 갖춰야 할 시설이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임지에 1년 생활비도 지원 못 받고 부임했으니 교구 운영비는 언감생심이었다.

프랑스 알사스 지방 출신으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이던 안주교는 성모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우선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보인 루르드의 성모를 교구 주보로 삼았다. 새 임지에 성모님의 은총과 기적을 청하는 간절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안주교는 성모님께 교구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세 가지 소원을 허원한다. 그리고 이 소원이 이뤄지면 교구 내 가장 아름다운 곳에 성모당을 건립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이 성모당 건립의 시초가 됐다. 당시 안주교는 너무나 절박한 심정으로 성모님께 의탁했던 것이다.

“성모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주교관과 신학교 그리고 주교좌성당 증축을 이룰 수 있다면 주교관에서 제일 높고 아름다운 장소를 성모님께 봉헌하고, 그곳에 루르드의 성모동굴 모형대로 성모굴을 지어 모든 신자들이 순례토록 하겠습니다.”

7년 만에 결실 맺어

믿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했던가. 37세의 젊은 주교는 ‘신뢰하고 일하라’를 사목모토로 갓난아기 같은 새 교구를 성모님께 의탁하는 믿음으로 봉헌했으며, 그 후 모든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당초 10년 목표로 추진한 교구 사업이었는데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7년 만에 모든 것을 이뤘다. 기적이었다.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교구 숙원사업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안주교는 성모님께 허원한지 2년만인 1913년 12월 4일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등의 협력으로 주교관을 완성했고, 1914년 10월에는 성유스티노신학교를 건립했다. 하지만 계산주교좌성당 증축은 이뤄지기 어려워 성모굴 건립도 자연히 늦어질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중 계산주교좌본당 보좌 소세 신부가 중병을 앓아 임종 직전에 이르렀다. 안주교는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보인 성모님께 소세 신부를 낫게 해주면 주교좌성당 증축 전에 성모동굴을 봉헌하겠다고 새로 약속했다.

안주교는 이후 소세 신부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자 1917년 7월 31일부터 성모동굴 공사를 시작해 1918년 성모승천 대축일인 8월 15일 공사를 마쳤고, 10월 13일 성모당을 축성했다. 안주교의 열정과 노력에 감복한 성모님께서 그의 허원을 들어주신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성모당 동굴 윗면에는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바친 서원에서)란 글귀가 적혀 있다. 1911은 대구대교구 설립 연도이며, 1918은 초대 대구대교구장 안세화 플로리아노 드망즈 주교가 교구를 위해 하느님께 청한 세가지 허원이 이뤄진 해를 가리킨다.

성모당의 특징

성모당은 프랑스 피레네 산맥 북쪽 기슭 갸브 강가에 있는 루르드의 성모동굴과 크기는 물론 바위 모양까지 같다. 붉은 벽돌 건물로 외부는 벽돌로, 굴 내부는 시멘트이다. 기념틀의 모양은 교황 레오 13세가 바티칸 정원에 만들어 놓은 루르드의 성모기념동굴을 본떴다. 내부는 암굴처럼 꾸며졌고 성모당을 바라보며 오른쪽 상단에 성모상을 모셨다.

성모상은 루르드의 성모님이 15세 소녀 벨라뎃다에게 발현했던 그 모습 그대로 머리에는 흰 수건을 썼고, 청색 띠를 띠었으며, 손은 합장하고 팔에는 은알(묵주)이 드리워지고, 벗은 양발 위에 금해당화가 피어있다.


안세화 주교 성모당 봉헌 당시 교지(요지)

본 주교는 교황의 분부를 모시고 조선 남방주교 지방으로 작정되어 올 때에 요긴히 세울 것이 많되 재정이 없는 것을 보고 대구에 온 후 첫째 주일날에 루르드 성모를 조선 남방주보로 삼아 허원하였으되, 성모께서 주교당과 신품학당과 큰 성당 넓히기에 요긴한 재정을 보내주시면, 주교당 기지 중에 제일 높고 좋은 곳에 루르드굴과 같은 굴을 지어 남방 모든 교우들을 이곳에 참배하게 권면하기로 하였더니, 그 허원을 발한지 7년이 되고 그동안에 4년이나 난리 때문에 애긍을 받기에 더 어려우나 성모께서는 본 주교의 구한 것을 주실뿐 아니라 다른 은혜까지 많이 주셨은즉 오늘은 허원을 채우는 날이로다.

첫째는 대구에 루르드 허원굴과 성모석상을 축성하노니 대구 남산동에 주교당과 신품학당과 명도회관과 수녀원이 있는 곳 제일 좋은 자리에 루르드 굴을 지었느니 그 굴의 장광과 바위 모양은 루르드의 본굴과 같고, 그 굴은 벽돌당 안에 있는데 그 벽돌당은 교황 레오 13위께서 로마 본대궐에 루르드 굴을 지으실 때에 그 굴을 놓기 위하여 지으신 당과 대개 같다.

둘째는 남녀 교우들을 참배하기로 권면하노니 교우들이 참배할 뜻이 대개 세가지 있을 수 있으니 한가지는 성모를 그저 공경하고 감사할 뜻으로 참배함이요 한가지는 영혼이나 육신의 은혜를 얻고자 하여 굴 앞에서 구하며 기구의 특별한 효험이 있을 줄 믿는 뜻으로 참배함이요 한가지는 영혼이나 육신의 은혜 얻기를 원하는데 성모께서 얻게 하시면 굴에 참배하기로 미리 허원하고 은혜를 받은 후에 허원을 채우기 위하여 참배하는 뜻이니라.

마승열 기자 mas@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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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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