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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영 수녀의 성경말씀나누기] 마르코 복음서(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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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구원계획 참여하려면
신자도 파스카의 길 통과해야

2. 삽화: 영광스러운 변모와 엘리야 재림 논쟁(마르 9, 1~13)

고통 중에 있을 때에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고통 속에 매여 있게 된다. 이런 때 실낱같은 빛이 있다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십자가 추종의 삶이 아무리 힘든다 해도 부활의 영광을 생각할 수 있다면 이는 더없는 희망이 된다.

예수의 변모 사화(9, 2~10)는 부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예시해 주는데, 변모사화 앞에는 임박한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말씀(9, 1)이 실리고, 변모사화 뒤에는 엘리야 재림과 관련된 논쟁(9, 11~13)이 실려 하느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2베드 1, 17~18 참조). 예수의 청중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자들이 있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주어진다. 마르코는 이어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체험한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그들이 궁극적으로 도래할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고 있음을 알려 준다. 사람의 아들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 나라의 궁극적인 도래, 곧 구원을 지향하고 있다.

영광스러운 변모(9, 2~10)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온 분들은 이즈르엘 평야가 한가로이 내려다보이는 둥근 지붕 모양의 타보르 산 정상에 세워진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성전’을 기억할 것이다. 해발 563m, 폭은 약 3.3km 정도밖에 안되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주변이 평원이라 우뚝 솟아 있는 느낌이다. 타보르 산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장소였다고 최초로 입증한 사람은 예루살렘의 주교 치릴루스였다고 하는데, 성경의 ‘하르 타보르(높은 산)’와 잘 어울린다.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전망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의 모습은 명백히 부활을 예시한다.

이야기의 구성이 하느님이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신현사화(탈출 24장)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이렛날’ 하느님께서 구름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탈출 24, 16) 이 사건은 ‘엿새 뒤에’일어난다. 하느님의 계시가 이루어진 결정적인 시점이라 하겠다. 종말에 나타나게 되리라는 엘리야와 모세(묵시 11, 3~6)가 현시를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의 눈부시게 빛나는 옷은 천상 영광의 표징 가운데 하나이다. 세 명의 제자들,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천상행복을 앞당겨 체험한 것이다.

예수님의 변모는 종말에 완전히 드러날 예수님의 정체를 일시적으로 보여주며 부활의 영광을 드러낸다. 베드로는 눈앞에 펼쳐진 천상행복에 취하여 초막 셋을 짓고 여기에 머물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보는 영광은 완전하지 않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7절). 예수님의 세례 때 들려오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다시한번 상기시킨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다시한번 제자들에게 이르신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실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9절) 마르코 복음서에서 제자들에 대한 마지막 함구령이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겪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역사적 예수의 삶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엘리야 재림 논쟁(9, 11~13)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이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율법학자들의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여기에는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인들과 빚었던 갈등이 묻어 있다.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종말의 인물로 받들었지만, 유다인들은 종말이 도래하기 전 엘리야가 재림한다고 성서(말라 3, 23~24; 집회 48, 10~11) 말씀을 인용하여 엘리야가 아직 재림하니 않았으니 예수가 종말의 인물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는 것인데, 이는 곧 세례자 요한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하느님 나라의 온전한 도래를 위해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야만 했던 점에서 공통된다. 두 사람 모두 구약의 예언자들이 겪었던 것처럼 고난을 받아야 하며, 세례자 요한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운명을 예고한다.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도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파스카의 길을 통과해야한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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