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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명윤리] 12 - 낙태

무죄한 한 생명에 가하는 폭력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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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무고한 생명의 죽음. 붉은색은 여아를, 청색은 남아를 나타낸다. 그림=장우의 화백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언젠가 매우 충격적인 사진 한장을 본 적이 있다. 태낭 밖으로 불쑥 나온 낙태아 손이 의사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처절한 장면이다. 어머니 몸에서 잘려 나가면서도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는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이 사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죄한 한 아기에게 가해지는 가장 폭력적 행위가 바로 낙태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동안 태어나는 신생아가 약 43만명인데 비해 낙태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 태아는 15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사회ㆍ경제적 이유 등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낙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나는 가끔 낙태와 관련해 상담 전화를 받곤 하는데, 장애아 임신이라든가 성폭행으로 임신이 되었는데 낙태를 해도 되는가를 묻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고통스럽겠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생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삶의 이치이며 또 우리 신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 생명에 대해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비록 장애아라고 하더라도, 또 원치 않는 아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감히 한 사람의 생명에 대해 "너 죽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가톨릭교회 윤리는 태아 때문에 산모 생명이 직접 위협받고 있는 경우 외에는 낙태를 용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록 태중의 아기라 할지라도 우리와 꼭 같이 생명의 존엄성은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상 낙태 원인을 제공하는 측은 낙태아 부모이거나 우리 사회의 여러 악들임에도 그 책임을 뱃속 아기에게 돌리고 있다. 무죄하고 약하고 또 방어 능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태아에게 가해지는 가장 무자비한 폭력인 낙태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의 여러 악들이나, 제도적 폭력 혹은 그릇된 성문화가 낙태와 같은 폭력을 양산하고 있다면 그 폭력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그 사회의 몫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그 책임을 떠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의식 변화가 시급하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에서 미혼부모에 대한 인식 변화에 이르기까지 태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우리 노력은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미혼부모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비난하기보다는 미혼부모로서 아기를 낳았다는 용기가 칭찬받을 수 있는 사회, 또한 미혼부모가 신자들의 따가운 눈총 없이 교회의 직원으로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교회로 변모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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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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