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최혜영 수녀의 성경말씀나누기] 마르코 복음서(31)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가진 것 팔아 나누고 가난 선택
백배의 열매와 영생 보상 받을 것

4. 어린이와 하느님 나라 (마르10, 13~16)

앞서 이혼에 대한 논쟁(10, 1~12)에서 약자인 여자들의 입장에서 혼인해소불가에 대한 말씀을 들었는데, 이제 자연스럽게 또다른 약자인 어린이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된다.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볼 때 어린이는 법적 권한이나 사회적 지위가 없는 약자 중의 약자였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14b절)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인간 세상의 논리를 뛰어넘는 혁명적인 발언이었다. 산상 설교(마태 5~7장)와 마리아 찬가(루가 1, 46~55)를 상기시키는 이 말씀은 하느님의 통치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선정(善政)임을 가리킨다. 어린이들은 상처입기 쉽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느님 나라가 어린이들처럼 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차지라는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겠는가?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15절). 하느님 나라는 바리사이처럼 열심히 공덕을 쌓아서 스스로 차지하는 소유물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무상의 선물로 다가오시는 역동적인 하느님의 다스림이시기에, 인간의 업적을 넘어서며 궁극적으로 그 완성은 종말론적 전망 안에 놓여 있다.

이제 한 폭의 그림처럼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는 광경을 만난다. 어린이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의 부서지기 쉬운 연약함, 작은 것에도 감탄할 줄 아는 순수성, 무조건적인 순응성이다. 어린이들은 하느님 나라를 자기 방식으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방식 그대로 수용하고 선물로서 받아들인다.

부와 가난 (10,17-31)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와 가난에 대한 윤리적인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내용들이 세 가지 에피소드로 전해진다. 첫째는 어느 부자가 자신의 재산 때문에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르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고(10, 17~22), 두 번째는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가르치신 내용이고(23~27절), 세 번째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 대한 현세와 내세에서의 보상(28~31절)에 대한 말씀이다.

어떤 부자가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잘 지키며 열심히 살아온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고 하시는데, 그래도 제자됨에 부족함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21절). 그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 슬퍼하며 떠나갔다고 한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까?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23절).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영적으로‘특전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재물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눈을 돌려 하느님의 선물에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가난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제자직에 방해가 되는 것은 철저하게 포기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앞서 파견 설교에서 보았듯이(6, 7~13) 유랑전도사의 생활이란 간소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가난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사명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지상적인 것들을 떠나야 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29-30절).

예수님의 사명에 동참한 제자들에 대한 보상은 단지 종말론적일 뿐 아니라, 현재적이고 교회론적이다. 그들은 가족과 소유물을 떠났지만 새로운 가족과 소유물을 갖게 되었고,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의 열매를 맺은 씨앗처럼 풍요로운 결실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보상 목록에서‘아버지’가 빠진 것은 하느님의 새 가정 안에서 가부장적 지배가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제자공동체에는,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8-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2

이사 38장 3절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