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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영 수녀의 성경말씀나누기] 마르코 복음서(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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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마지막에 행한 소경치유
시력회복 넘어 ‘백성 구원’ 의미

5. 예리고의 소경 바르티매오를 고치심(마르 10, 46~52)

예수님의 일행이 어느 새 예리고에 이르렀다. 예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24㎞ 밖에 떨어지지 않은 도시로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 거의 끝나가고 본격적인 수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한다.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 첫머리에 베타니아의 소경 치유(8, 22~26)가 실렸던 것처럼 이제 여정의 끝자락에 비슷한 소경 치유 이야기를 실어 단순한 치유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교육과 관련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두 소경 치유사화 안에는 어떤 발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베싸이다의 소경 이야기에서는 눈먼 이가 타인의 손에 이끌려 예수께로 온다. 예수님께서는 환자의 두 눈에 침을 뱉고 손을 얹는 등 길고 복잡한 치유과정을 거쳐 점진적인 치유행위를 해 주시는데, 이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고 그분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이 길고도 험한 길임을 예시한다. 소경은 치유를 받은 후에 다시 집으로 보내지고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함구령이 내려진다.

이에 비해 바르티매오 이야기에서는 등장인물의 성격이 뚜렷하고 복잡한 과정 없이 즉각적이고 완전한 치유를 받게 된다.

처음부터 그의 이름은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고 분명하게 밝혀지고 주체성이 뚜렷한 주인공으로 드러난다. 그는 눈먼 거지로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는 처지지만, 매우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성격의 소유자로 예언적인 통찰력이 돋보인다.

“다윗의 자손(아들)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47절) ‘나자렛 사람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바르티매오는 외치기 시작한다.

바르티매오란 이름이 인간 아버지와의 연관성을 나타내듯, ‘다윗의 자손(아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상적인 성군 메시아가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리라는 믿음을 담고 있다.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아’이시라는 것을 환기시키며 하느님의 자비로운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이스라엘이 되어 구원을 요청한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는 그의 청원은 단순히 신체적인 치유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느님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외치던 탄원과 같은 것이었다.(시편 6, 3; 9, 14; 40, 12 ; 123, 3 등)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는다. 신앙고백과 같은 바르티매오의 외침이 군중들에게는 아직 메아리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비록 눈먼 소경이지만 어떤 확신으로 다시한번 메시아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는 그를 가로막는 힘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49절)라고 계속하여 외친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이야기는 반전되어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고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 예수님께서는 가던 길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 오너라”고 말씀하신다(49절).

일대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도 바뀌어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라고 말한다. 그러자 소경은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한다. 그의 태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과 닮았다. 그의 적극적인 태도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범적인 제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51a절). 이 질문은 앞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에게 하셨던 질문과 같은 것이었다(10, 36). 예수님께서는 그가 스스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주체성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초대한다.

“스승님(랍부니),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랍부니’(아람어)라고 애정어린 호칭으로 예수님을 부르는 그는 청하는 분이 누구신지, 또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다시 보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태생 소경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소경이 된 후 그가 상실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52a절)고 말씀하심으로써 그가 육체적인 치유 뿐 아니라 근원적인 구원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확인시켜 준다. 시력을 회복한 것 이상으로 그의 영적인 통찰력이 회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곧바로 시력을 선물로 받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길을 따라나서게 된 것이다.

최혜영 수녀 (상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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