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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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영 수녀의 성경말씀나누기] 마르코 복음서(35)

‘메시아’로서 위력 권위 보이며 믿음 기도 통한 ‘용서’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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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화과 나무와 성전 (마르 11, 12~25)

이틀째 되는 날, 성전 정화 사건이 일어나는데 사건 앞뒤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 저주 이야기가 소개된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하느님께 맞갖은 경배의 장소가 되지 못하는 성전이 상징적으로 연결되고,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으로서 하느님 심판을 예고하시는 메시아로 드러난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12~14절)

이스라엘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경작되는 무화과, 올리브, 포도나무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작물로 성경 안에 종종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시장하신 차에 무화과 열매를 기대하고 가까이 가셨는데, 잎사귀만 무성하고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 것을 보시고 저주를 내리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독자들이 당혹스럽게 느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유일한 기적 이야기인데 왜 하필 자연물에 대한 저주이야기일까? 그것도 제 철도 아닌 때에 말이다.(13b절)

“포도나무에 포도가 하나도 없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하나도 없으리라. 이파리마저 말라 버릴 것이니 내가 그들에게 준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예레 8, 13; 참고 미카 7, 1)

아무래도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메시아로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약성경 말씀에 빗대어 하신 말씀이리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실망이 허기짐으로 나타나고, 제 때가 아니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미 회개의 시기를 놓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말라버리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수 있는 위력을 갖고 계심을 상징한다.

성전을 정화하심 (15~19절)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고 믿었던 지극히 거룩한 처소로서 최상의 예배 장소였다. 그런데 온갖 상행위로 떠들썩한 모습과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모습은 옛 예언자의 질타를 떠올리게 한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이사 56, 7)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예레 7, 11)로 만들어 버렸다.”(17절)

예수님께서 상인들을 쫓아내시고 상과 의자를 둘러엎으시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혁명가이셨다느니 예수님께서도 폭력을 행사하셨다느니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성전정화의 상징성을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성전정화가 이루어진 성전 마당, 이방인의 구역은 명실공히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된다. 세말에 가서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 되고 올바른 제사를 드리는 곳이 되리라는 예언자들의 말이 이루어진 것이다.(말라 3, 1~5; 즈가 14, 20~21) 예수님은 모든 민족이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는 성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시는 메시아이시다.

성전의 주인으로서 권위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군중을 보고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 두려움을 느끼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예수님께 성전 모독죄가 적용되어 최고의회에서 심문을 받게 될 것이다.(마르 14, 58)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 (20~25절)

다시 이야기는 무화과나무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신앙과 기도와 용서의 위력에 대한 가르침과 연결된다. 각각 따로 전해져 오던 예수님의 토막 말씀(단절어) 셋(22b~23, 24절, 25절)이, 22b~23절과 24절은 ‘믿다’라는 동사로 연결되고, 24절과 25절은 ‘기도하다’는 동사로 연결되고, 25절에서는 ‘용서하다’는 동사로 연결되어, 신앙과 기도와 용서의‘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는 연쇄어 구문을 만들어 준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마음 속의 의심을 몰아내고 하느님께 전적인 신뢰를 가능하게 한다. 기도는 이 신앙의 표현으로써,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한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되며, 기도할 때만이 우리는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의 위력으로 뿌리째 말라버리는 것처럼 하느님을 등지고 불신하는 이스라엘은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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