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와 인간의식 식물상태의 환자도 의식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였다.
복잡한 뇌의 구조 안에 또렷한 인간의식이 활동하고 있다.
그림=장우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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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교통사고로 2년간 식물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30대 남성이 자신이 혼수상태로 누워있던 기간 동안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알아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의료진으로부터 `거의 사망`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식물인간 상태로 2년을 누워 있다가 깨어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의사들은 내가 의식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알아듣고 절망감에 울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가.
또 미국에서는 스캔틀린이라는 여성이 20년간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놀랍게도 갑자기 의식이 돌아왔다고 한다. 뺑소니차에 치여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가족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가 거의 기적적으로 다시 의식을 찾았고, 이제는 말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겨우 소화와 호흡만이 가능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혼수상태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환자 가족들은 병상에서 환자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런 처치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어떤 가족들은 몇년 혹은 몇십년 넘게 지속되는 환자 혼수상태가 이미 회복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나마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적 치료까지도 중단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환자 자신의 고통은 물론, 그 가족들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그런 환자들에 대한 안락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환자 가족들의 고통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그 고통 때문에 생명을 죽여도 될까? 죽을 환자인데 오히려 안락사가 그 환자와 가족들에게 더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끔직하다. 인간을 쓸모없는 인간과 아직도 쓸 수 있는 인간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에선 그런 생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그렇게까지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식물상태 환자와 뇌사자는 명백히 다르다. 그 차이점은 뇌사자는 회복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이고 식물상태 환자는 위의 사례들에서 보는 것처럼 회복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기에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둔다는 것이 타당치 않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교통사고로 식물상태가 된 한 영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 여성에게 테니스 치는 장면과 집안의 여러 방을 돌아다는 것을 상상하라고 주문을 하고 뇌 반응을 관찰했더니 놀랍게도 정상인 뇌 부위와 거의 같은 부위에서 활동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식물상태 환자도 의식이 있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다.
식물상태 환자 때문에 그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다면 이를 환자의 죽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함께 그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