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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영 수녀의 성경말씀나누기] 마르코 복음서(12)

예수님과 운명 공동체인 열두 제자 존재와 활동으로 복음선포 사명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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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두 제자를 뽑으심(마르 3, 13~19)

예수께서 주로 활동하신 갈릴래아 호숫가는 푸르고 널찍해서 언뜻 보면 호수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동해처럼 확트인 바다 같다.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에서는 갈릴래아 바다, 루카 복음에서는 겐네사렛 호수, 요한 복음에선 갈릴래아 바다 혹은 티베리아 바다라고 일컫는다.

갈릴래아 호수는 해발 2814m나 되는 헤르몬 산의 눈이 녹으면서 담수가 요르단 강을 따라 흘러들어와 호수가 된 것인데, 가히 ‘생명의 바다’라 일컬을 만큼 이스라엘 전 지역의 물줄기 역할을 해서, 요즘도 호수가 오염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갈릴래아 호수의 물이 요르단 강을 따라 남으로 흘러가다보면 사해까지 이르게 되는데, 더 이상은 물이 흐르지 않고 한 곳에 머물러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된다.

같은 수원지의 물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아무리 맑은 물이라도 계속 한 자리에 머물면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 인생의 교훈인 것 같다.

마르코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주로 호숫가에서 군중을 가르치는 데 비해(2, 13; 3, 7~8; 4, 1~2; 5, 21), 제자들에게 중요한 일을 하실 때에는 군중에게서 떨어져 산으로 오르신다(3, 13; 9, 2; 14, 26). 열두 제자를 산에서 부르시고(3, 13), 기도하시려 산으로 물러가시고(6, 46) 올리브 산에서 떠나실 것이다(14, 26). 산은 예로부터 하느님의 계시가 이뤄지는 거룩한 장소로 표상됐다.

이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에 따른 것인데, 부르심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예수님 편에 있다. “열둘을 세우시고”(14. 16)라는 표현을 직역하면 “열둘을 만드시고”가 되는데, 이는‘천지창조’와 같이 중요한 사건의 의미를 지니며, 일정한 곳과 일정한 때에서 일어나는 일회적 사건을 가리킨다. 열두 제자를 선정하신 이유는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14b~15절)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은 운명공동체를 이루며, 존재와 활동으로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갈 것이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이 꿈꾸고 있던 종말론적 희망의 핵심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말 구원의 때에 열두 지파를 총망라한 완전한 민족 부흥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대망하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 12지파 체제는 이미 사라지고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레위 지파의 절반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열두 제자의 임명과 파견은 종말의 모임을 상징하는 예언자적 표징행위로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돌입하는 하느님 나라의 능력을 드러냄으로써 이미 세말 이스라엘의 실존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G. 로핑크,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분도출판사, 1985, 24-27쪽).

열두 제자단의 구성을 보면 각양각색이다. 시몬 베드로, ‘천둥의 아들들’로 불리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시몬의 아우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요한 1, 45~49의 나타나엘과 동일인물로 여겨짐), 세리였던 마태오, 토마스(요한 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의심 많은 제자로 쌍둥이라고 불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 이 중에서 안드레아와 필립보만이 그리스어식 이름을 갖고 있는데, 아마도 이 두 제자들은 주로 이방인들의 지역에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단에 세리였던 마태오와 열혈당원 시몬이 함께 있었다는 것은 최대의 적대세력이 단일 단체에 결합되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인들과 협력하고 있었던 반면에, 열혈당원들은 로마 점령세력이 하느님의 주권과 부합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들과 극도의 대치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파쟁과 당쟁으로 분산된 이스라엘을 재집결하여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모으실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14절)는 표현에서 초대교회의 숨결을 읽을 수 있는데, 원래 ‘사도’는 부활 후 그리스도교에 도입된 존칭어로 ‘예수 부활을 선전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동안은 제자들로 일컬어졌겠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1고린 15, 5) 그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 파견하신 후부터는 사도들로 탈바꿈한다.

최혜영 수녀 (성심수녀회,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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