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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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간식과 '하늘나라 시민'

윤병훈 신부 (청주교구 양업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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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방학에 들어가던 날, 종업 미사에서 세례자 17명과 첫영성체자 5명이 탄생했다. 가톨릭 학교 신자율은 대부분 10대를 유지하는데 반해 우리 양업학교만 80를 넘어서는 상태에서 17명이나 새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 학교로서는 기록적 숫자다.

 우리는 기숙사학교라서 학생들이 늘 배고픔으로 껄떡 인다. 영양사 선생님이 3식을 최고급 요리로 아무 불평이 없도록 풍성하게 차려내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치는 폭식(?) 학생들이다.

 1년 동안 수녀님은 학생들 교리시간을 이끌었다. 덕분인지 마무리 피정까지 낙오자 없이 모두들 세례를 받았다. 방과 후 학교도 노는 게 더 좋다는 이유로 신나게 빼먹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지내는 학생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학생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는 데 놀랐다. 나는 그 비결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수녀님은 의외의 답을 들려줬다. "우리 학생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은 배가 부르면 만사를 귀찮아합니다. 이 점에 착안을 했어요. 학생들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 대충 오후 5시인데 1시간 뒤면 저녁식사 시간이라서 배가 고파 외출도 못하고 꼼짝없이 학교에서 대기상태에 놓이기에 이 때를 교리시간으로 정했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시간만큼은 무엇을 줘도 군침이 도는 시간이라는 데 착안한 수녀님이 입맛이 당길만한 맛있는 간식을 정성껏 준비하고는 예비신자교리반으로 학생들을 불러 모은 것이 적중한 것. 떡볶이에 만두, 컵라면, 떡을 1년 내내 정성껏 마련하고는 학생들을 기다렸다. 틈새 시간이라 낭비해 버리기 쉬운 시간을 적절히 활용함도 이익이거니와 배고픔을 달래주는 간식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 숨은 비결로 모든 학생이 매주 교리시간에 참석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 친구만 교리보다는 노는 게 좋아 교리반 출석을 한동안 포기한 채 지냈다.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신나게 지내다가 하루는 교리실에 학생들이 북적대는 걸 보게 됐다. 그 학생은 오후 5시께면 교리실을 지나치는데 동료들이 맛있는 간식을 먹는 것을 본 것이다. 이 때 이 학생은 조건반사적으로 교리실 문을 열었고 수녀님에게 사정을 했다. "수녀님, 저도 다시 예비신자반에 올 수 있나요? 간식이 먹고 싶어서요." 수녀님은 곧바로 그 마음을 읽고 아무런 조건없이 그 학생을 다시 받아들였다. 그 학생의 복귀로 예비신자교리반이 100 세례를 받게 됐다. 배가 고파 간식을 선택한 학생들은 1년 내내 간식을 손수 준비하는 수녀님 사랑을 읽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고, 듣고,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돼 하늘나라 시민으로 태어났다.

 수녀님께 감사, 하느님께 감사, 우리 모두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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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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