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아하1 생명윤리] 44 - 동성애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동성애// 성의 구별과 동성의 얽힘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장우의 화백
 
 지난해 여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동성 부부를 목격했다. 어느 식당에서 우리 일행 옆 테이블에서 다정하게 얘기하며 식사하던 젊은 두 여성과 유모차에서 우유병을 물고 있는 아기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내게 귓속말로 미국에는 동성 부부를 이렇게 가끔씩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미국에서는 이미 1996년 하와이 주를 시작으로 해서 동성애자 결혼이 합법화되기 시작했고, 몇몇 주에서는 입양까지도 허용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동성애 문제는 과거와는 달리 성적 취향에 따른 성 풍습 정도로 여겨지면서 사회적 담론의 수준으로까지 표면화되고 있는 것 같다.

 동성의 사람들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남자끼리나 여자끼리 갖는 성적 관계를 일컫는 동성애는 과거에는 일종의 범죄로 간주되기도 했다. 때문에 동성애자는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거나 매우 무거운 형벌에 처해지기도 했지만 현대에 와서 의학과 유전학, 심리학 발달과 더불어 동성애의 여러 원인들이 밝혀지면서 동성애로 인해 야기되는 고통과 좌절의 무거운 짐을 사회가 함께 덜어나가는 노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동성애를 오늘날 사회에서 말하는 단순한 형태의 성적 취향에 따른 행동으로 분류하듯 정당화할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사람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고 각각의 성별은 본성적, 사회적으로 고유의 역할과 삶의 모습이 있다. 그럼에도 단순히 드러나는 성적 성향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부정한다면 그 사람의 총체적 인격의 참모습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동성애 성향이 여러 정신병리 현상이나 신경증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가톨릭교회 역시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의 처지가 고통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비록 그들의 동성애적 행위가 인정될 수 없다 하더라도 심리적, 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곧 동성애 행위 그 자체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들의 어려운 처지는 함께 아파해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섹시하다는 말을 듣기 좋아한다. 섹시라는 단어의 본래 뜻은 남성, 여성의 구별을 의미하는 섹스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성적 매력`을 의미한다. 성적 매력이라면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아닐까?  그렇다면 남성적 매력, 여성적 매력을 잘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것, 곧 남성은 남성답게, 여성은 여성답게 살아가는 것이 성적으로 매우 건강하게 하는 삶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시각에서 동성애를 바라본다면 이는 결코 섹시한 삶은 아닐 것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7-04-1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1

히브 12장 28절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려 하고 있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감사와 함께 존경과 경외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를 드립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