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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명윤리] 45 - 에이즈

이동익 신부(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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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 //에이즈 환자의 절망과 죽음을 표현한다.
사람 주변이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 것은 사회의 차별과 몰이해를 나타낸다.
그림=장우의 화백
 
 에이즈는 교회의 보건 직무와 의료윤리 분야에서 가장 크게 부각된 새로운 도전이다.

 에이즈가 발견된 지 25년이 지나면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사회적 차별과 억압은 여전하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에이즈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세상은 마약, 문란한 성생활 등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에이즈는 인과응보식의 천벌이라고까지 외쳐대던 것도 기억난다.  

 그러한 세간의 인식이 오늘날 조금은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몰이해로 에이즈 감염자들이 겪는 고통은 매우 크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피의 수혈 또는 살균되지 않은 주사 바늘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고, 아기들이 전혀 예기치 않게 부모에게서 바이러스를 옮겨 받을 수 있다. 곧 에이즈 감염과 환자들의 고통은 한 개인의 책임 문제로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됐다는 의미다.

 에이즈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에이즈는 사회적 질병이다. 그 이유는 가난한 지역과 사회적으로 억압 받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온갖 질병이 창궐했던 것처럼 에이즈도 매우 교묘하게도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즉시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파묻혀 에이즈는 결국 거기서 헤어나질 못하게 된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숱한 차별과 억압은 한 마디로 인권 문제이다. 에이즈라는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부당하게 차별 받아야 하고, 이러한 차별로 또 다시 그들을 절망케 하는 악순환은 반복된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일상적 접촉으로는 타인에게 절대로 감염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종 에이즈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하는 때가 있는데 이는 감염의 위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병원이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의료 처치에 있어서, 예를 들면 소독을 잘 하는 등의 상식을 지키면 그들을 치료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의료인이 에이즈 환자를 차별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의 가장 기본적 자세마저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에이즈 환자들을 격리하고 차별하고 또 감시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는 절대로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감시와 차별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절망이고, 또 다른 죽음일 뿐이다. 질병 극복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불평등과 차별은 그 질병을 더욱 악화시키고 나아가 사회 자체를 더욱 병들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에이즈 환자들의 인권 증진을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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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7-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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