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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비통함이 가장 큰 축복으로

현동준 신부(원자력병원, 서울 시립북부노인병원 원목실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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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나이 50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는데, 하늘의 뜻을 깨닫기는커녕 정치성ㆍ사회성이 전혀 없어 세상의 악과 불의를 보면 도저히 참지 못하는 내 못된 성질 때문에 일생일대의 큰 사건(?)을 겪은 적이 있다. 나처럼 팔자가 센 신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대한민국 신부 중에) 팔자가 사나워도 이렇게 사나울 줄은 정말 몰랐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 진검승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무라이처럼 신자들에게 닛폰도(일본 무사의 칼) 신부라는 말을 은근히 즐기면서 듣곤 했다. 그러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끝까지 가보자`는 기질 때문에 결국 어느 사건으로 말미암아 추락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특별한 잘못도 없이 문제의 인물로 낙인 찍힌 억울함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오죽하면 2년 여의 모진 세월 동안 밥이 목구멍으로 어떻게 넘어 갔는지, 사는 것이 역겨워 차라리 죽는 것이 더 쉽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상처를 곱씹고 곱씹다 보니 멋진 외모(?)가 망가지고 윗머리의 모발이 계속 빠지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마귀처럼 변해 있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정신적ㆍ영적으로 완전히 죽어가고 있구나, 남에 대한 증오와 미움으로 인해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심장을 찌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내 마음에 독을 품고 있으니 남이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이 아무리 나를 죽여도 내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나는 결코 죽을 수 없다는 깨달음이 생긴 것이다. 남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빠지게 되면 그 순간부터 내 몸과 마음, 영혼을 갉아먹으면서 서서히 죽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증오와 미움의 고질적인 병에서 벗어나 나를 살려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하느님과의 정신적 줄인 기도를 잡았다. 기도를 통해 인간이 아닌 하느님만이 나를 치유할 수 있으니, 먼저 내가 치유돼야 환자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고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누구나 비통한 사연을 갖기 마련이다. 나의 못된 성격을 기도로 정화하면서 그 비통함이 가장 큰 축복으로 바뀌는 신비를 누가 알았을까. 내 사나운 팔자는 병원사목을 하면서 기도를 통해 바뀌었다. 불행과 고통을 기도와 침묵 속에서 바라보니 깨달음의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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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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