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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첫 대주교 뮈텔’ 기록 재정리 필요

한국 교회 기틀 다진 목자 승품 연도 등 기록 엇갈려 주요 약력 보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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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대 조선·서울대목구장(현 서울대교구장) 뮈텔 주교가 한국 교회 최초로 ‘대주교’가 된 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가 재임한 43년(1890~1933) 동안 한국 교회는 ‘첫 복자 탄생’이라는 영광과 함께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부임 당시 1만 7000명이었던 신자 수는 선종 무렵 12만 명으로 7배 증가했으며, 명맥이 끊겼던 한국인 사제를 약 100명 배출하고, 전국에 성당 200개를 세우면서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홈페이지에는 그의 승품 날짜를 비롯한 주요 약력들이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홈페이지는 제8대 교구장 뮈텔(Mutel, 민덕효) 주교의 대주교 승품을 ‘1925년 3월’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교황청 공식 기관지 「사도좌 관보(AAS)」 제18권에 명시된 실제 날짜는 1926년 1월 11일이다. 비오 11세 교황은 이날 뮈텔 주교를 라티아리아(Ratiaria) 명의 대주교로 임명했다. 「뮈텔 주교 일기」에도 1926년 3월 26일 ‘로마에서 발송된 대주교 임명 사령장을 받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는 1925년 7월 5일 거행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의 공로를 인정한 ‘개인 자격’의 승품이었다. 뮈텔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가 한국 순교자 시복을 위해 전략적으로 양성한 인물이었다. 그는 1873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입학 후 로마 유학을 거쳐 시복 절차의 기초를 배웠다. 특히 1877년 사제품을 받은 뒤 조선 입국에 앞서 베트남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1900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7명을 포함해 64위의 순교 복자를 탄생시킬 시복 재판 준비 과정을 보며 실무를 익혔다. 이러한 전문성으로 뮈텔 주교는 훗날 자신의 사목표어 ‘피어라, 순교자의 꽃들아(Florete Flores Martyrum)’를 실현할 수 있었다.

주교 서품식(성성식) 정보도 바로잡아야 한다. 홈페이지는 ‘교구장 임명 이듬해(1891년) 로마에서 주교 성성식을 가졌다’라고 기록했으나, 실제로는 임명된 해인 1890년 9월 21일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신학교) 성당에서 파리대교구장 리샤르 추기경 주례로 거행됐다. 9월 21일은 조선에서 처음 선교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제2대 조선대목구장 성 앵베르 주교와 성 모방·샤스탕 신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한 지 51주년이 되는 상징적인 날이었다. 뮈텔 주교가 로마에 간 시기는 그 이후인 1890년 12월로, 레오 13세 교황을 알현해 조선 선교 현황을 설명했다.

또 홈페이지의 ‘1920년 백작 작위 수여’ 기록 역시 시점이 오기다. 「사도좌 관보」 제13권에 따르면, 뮈텔 주교는 1921년 5월 24일 ‘교황좌 보좌 주교(Assistens Throno Pontificio)’로 임명되면서 자동으로 ‘사도궁 백작(로마 백작)’ 작위를 얻어 교황청 귀족 반열에 올랐다.

교황좌 보좌 주교는 추기경 바로 다음 서열로 분류됐으며, 장엄 전례 때 교황의 옥좌를 보좌하며 교황 곁에 머물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과거 「경향잡지」 등에서는 ‘교황 탑전시종(塔前侍從)’이라 불렀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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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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