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칸 영성이 중세 후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서양 교회미술에 어떻게 시각화되어 왔는지를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교회미술학회는 9월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희년 기념-영성과 교회미술’을 주제로 2026년 추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기조강연에 나선 기경호 신부(프란치스코·프란치스코회(작은 형제회))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성미술을 중심으로 성인의 삶과 영성이 상징화된 과정을 살폈다. 특히 기 신부는 성인을 ‘제2의 그리스도’로 규정하는 해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제2의 그리스도’라는 표현 자체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완공될 때까지도 형성되지 않았다”며 “훨씬 후대의 호칭을 13세기에 시각화된 작품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토 디 본도네와 그의 공방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28폭에 대해 “이 작품들은 단순히 ‘프란치스코는 이런 인물’이라고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코가 어떤 길을 통해 그리스도로 변형되어 가는지를 보여 준다”며 “이는 순례자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변형의 길을 걸어 그리스도와 일치할 것입니까’라고 묻는 질문의 시각화”라고 전했다.
한유나(요안나) 서울대학교 교수는 성인이 중세 후기 시각문화에 미친 영향을 ‘감각’에서 찾았다. 그는 “미술의 영역에서 프란치스코가 연 것은 새로운 형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며 “보고 듣고 만지는 몸의 경험에서 출발하되, 감각이 닿을 수 없는 자리는 상상과 묵상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1223년 그레치오 성탄 예식에서 성인이 실제 여물통과 건초, 소와 나귀 등으로 구유를 재현한 점을 예로 들며 “프란치스코가 택한 방법은 설명이 아니라 감각이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러한 신앙 방식이 13세기 후반 개인용 소형 종교 이미지가 확산되는 흐름과도 이어진다고 봤다. 성당에서 주로 접하던 종교 이미지가 평신도의 집과 침실까지 들어오면서 신자들이 이를 가까이 두고 보고 만지며 묵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평신도에게 전달된 것은 이론이 아니라 공동의 경험이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주경미(스텔라) 충남대학교 교수는 성화 속 새, 늑대, 곰, 매, 양 등 동물 도상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짚고, 이를 오늘날 생태·동물영성과 연결했다. 주 교수는 “최근 연구에서 아시시 성당 전체에 있는 동물들을 조사했더니 200종이 넘었고, 그중 약 80가 아시시를 둘러싼 움브리아 지방의 자생종이었다”며 이 가운데 현재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도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이어 주 교수는 프란치스코 성화에 나타난 동물의 의미 역시 시대마다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새들에게 설교하는 모습이나 양을 구하는 장면처럼 성인전에 나오는 일화가 중심이었지만, 이후에는 성인전에 등장하지 않는 곰이나 매도 성화에 등장했다. 그는 특히 17세기 성화를 두고 “모든 동물과 존재가 성인의 영성과 관련되기 때문에 모든 생태 영성 쪽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호(유스티노) 서울대학교 교수는 나가사키 26위 순교자 이미지가 프란치스코회를 통해 유럽과 라틴아메리카로 확산된 과정을 조명했다. 그는 26위 가운데 다수의 프란치스코회 선교사와 신자가 포함돼 있었던 점을 짚고 “프란치스코회는 순교자들의 이미지를 주문하는 등 이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제작된 동판화들은 유럽 안에서만 유통된 것이 아니라 선교 지역인 라틴아메리카까지 퍼져 갔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그 대표 사례로 멕시코 쿠에르나바카 대성당의 벽화를 소개했다. 본래 프란치스코회가 운영하던 성당인 이곳의 내벽에는 나가사키 순교자들이 체포돼 순교지로 끌려가고 십자가형을 당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는 순교자 가운데 멕시코 출신 프란치스코회 수사 성 필립보 데 헤수스가 포함돼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교회 내벽 전체에 이런 모습이 묘사됐다는 것은 이 사건이 당시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례”라고 말했다.
홍희기(미카엘라)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는 장발(루도비코, 1901~2001)의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14사도화> 등을 통해 가난과 비소유, 겸손, 피조물과의 친교 같은 프란치스칸 영성이 한국 성미술 안에서 다양한 조형 언어로 표현돼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란치스칸 영성은 성인의 직접적인 도상뿐만 아니라 신체의 방향성, 비워진 공간, 빛과 유리 등 다양한 조형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춘만(크리스티나) 작가의 <비움의 십자가>에서 돌 자체가 아닌 돌 사이의 빈 공간이 십자가를 이루는 점에 주목했다. 홍 교수는 “작품에는 순교의 역사와 6·25전쟁, 5·18 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등 한국 사회의 고통도 함께 담겨 있다”며 “빈 공간은 단순한 공백을 넘어 십자가와 인간의 고통을 성찰하게 하는 공간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발표자들의 발제 후에는 금경숙(마르가리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좌장을 맡아 참석자들의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