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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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나이 듦의 속도

한정란 (베로니카, 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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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2월,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노인인 사회, 기대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바라는 ‘건강한 장수’로 가는 길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평균 기대수명이 83세를 넘었지만, 질병 없이 살아가는 기간인 건강수명은 66세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생애 마지막 17년가량을 병상에서 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최근 ‘저속노화’라는 개념이 사회 전반에 걸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노화 자체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믿음은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남들보다 느리게 늙어가면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제 저속노화는 단순한 개념을 넘어 ‘저속노화 식단’, ‘저속노화 운동법’, ‘저속노화 생활습관’ 등으로 구체화되고 다양화되며 하나의 사회적 신드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과연 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속도’일까? 독일의 안셀름 그륀 신부는 그의 책 「노년의 기술」에서 “건강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늙고 병드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건강은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야만 얻을 수 있는 은총이라는 것이다.

태어나 성장하고 늙어가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운명이다.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시는 우리 인간을 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안에 가두신 이유는 우리들의 좁은 소견으로는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우리가 모를 큰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화를 거부하거나 저속노화라는 강박 속에 스스로를 가두기보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노화의 여정에 순종하며 그 안에서 하느님 뜻을 묵묵히 살피는 것이 더 합당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 노화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질’일 것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100년이 채 안되는 인생의 시간을 매 순간 의미를 되새기며 최선을 다해 정성껏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신앙인의 삶일 것이다.

올해 7월 제5차 가톨릭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아 레오 14세 교황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본다. “노화로 우리가 약해져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할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 바오로 사도가 고백한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합니다”라는 말씀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질병과 노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낮출 때, 하느님의 더 크고 깊은 뜻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주신 노화를 거부하거나 억지로 늦추려 하기보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녀인 우리를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신 그 깊은 뜻을 헤아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노화를 대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마지막 여정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길일 것이다.


한정란 베로니카(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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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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