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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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언덕 위에서 빛나는 ‘위로의 등대’ 마리아 플라인 순례 성당

[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74.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마리아 플라인 순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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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성모 순례지 마리아 플라인. 잘츠부르크 구시가지 북쪽 해발 약 530m의 플라인베르크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성당 아래쪽에는 성모 성화가 처음 모셔졌던 기원 소성당이 있고, 언덕길에는 주님 수난을 묵상하는 네 개의 소성당과 골고타 언덕이 이어진다.

지난 글 ‘도시 영성’의 순례지 잘츠부르크 장크트 페터 대수도원<본지 2025년 7월 13일 자>에서 잘츠부르크 한복판에 자리한 장크트 페터 수도원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시가지를 북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푸른 언덕 위에 두 개의 탑을 가진 흰 성당 하나가 오가는 이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바로 마리아 플라인 순례 성당입니다. 빈이나 린츠 쪽에서 아우토반을 타고 잘츠부르크로 들어올 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로 그 성당이지요.

초창기부터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순례 사목을 맡아온 성모 순례지로, 장크트 페터 수도원이 도심 속에서 도시민의 영성과 수도 생활의 전통을 지켜왔다면, 이곳은 도심의 소음을 뒤로하고 자연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안식처라 할 수 있습니다. 잘츠부르크대교구의 대표 성모 순례지로, 성모 공경과 베네딕도회 영성이 조화롭게 살아 숨 쉬는 곳이지요.
 
마리아 플라인 순례 성당과 장크트 페터 수도원 분원. 1671~1674년에 잘츠부르크 대주교 막스 간돌프 폰 쿠엔부르크의 후원, 건축가 조반니 안토니오 다리오의 설계로 건립되어 성모 승천 대축일에 봉헌됐다. 1952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준 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초창기에는 잘츠부르크 베네딕도회 대학의 교수 수도자들이, 1824년부터는 장크트 페터 수도원 소속 수도자들이 정주하며 순례 사목을 맡고 있다.

잘츠부르크대교구의 대표 성모 순례지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마리아 플라인까지는 자동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뚜벅이들은 중앙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베르크하임-플라인브뤼케’ 정류장에서 내려서 걸어갑니다. 아우토반 아래 굴다리를 지나 언덕을 오르다 보면, 시내에서 그리 멀어지지 않았는데도 공기가 사뭇 달라짐을 느낍니다.

농가와 넓은 들판 사이로 걷노라면 좀전의 ‘음악 도시’의 활기는 사라지고, 멀리 펼쳐진 알프스의 능선이 순례자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힙니다. 그렇게 10여 분 걸었을 무렵, 언덕 위로 하얀 두 탑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그재그 조성된 골고타산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면 비로소 목적지에 다다릅니다.

성당 앞에 서니 이중 탑과 3층으로 구성된 정면부가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도심 주교좌성당의 압도적 장엄함과는 결이 다릅니다. 대성당이 신앙과 예술의 정수로 자신을 표현했다면, 순례 성당은 그 신앙이 도시 밖 들판과 순례길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있는지 보여줍니다. 흰 벽과 노란 장식이 들판의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납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성당 자체가 언덕 위의 거대한 신앙의 표지가 되어 빛을 발하지요.
 
마리아 플라인 순례 성당 주 제대와 본랑, 순례자들이 봉헌한 보석으로 치장된 은총 성화. 1674년에 설치된 주 제대에는 프란스 데 네베의 성모 승천 제대화와 위로의 성모 은총 성화가 함께 모셔져 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희망

성당 안에 들어서면, 흰색·금색·푸른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색감이 순례자를 맞이합니다. 바로크 양식 특유의 풍성한 장식은 압도함 없이 시선을 자연스럽게 성당의 중심인 주 제대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성당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주 제대 앞에는 작은 성모 성화 한 점이 모셔져 있습니다. 마리아 플라인 순례의 기원이 된 ‘위로의 성모’ 성화입니다. 1633년, 30년 전쟁 중 스웨덴군은 바이에른 숲의 레겐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당시 어느 빵집도 전소됐는데, 잿더미를 치우는 과정에서 이 성모 성화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기적 같이 발견됐습니다. 당시 지방행정관의 부인이던 아르굴라 폰 그림밍이 이 성화를 사들여 자신의 성 안에 있는 소성당에 소중히 모셨습니다.

1652년 그녀의 아들 루돌프가 더 많은 이들이 성모님을 공경할 수 있도록 플라인베르크 언덕에 목조 소성당을 세우고 성화를 옮겨 모셨습니다. 귀족의 성에 있던 성화가 언덕길 위의 기도처로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와 성모의 전구를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여러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면서 성모 순례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의 바로크 양식 성당은 잘츠부르크 제후 주교의 후원으로 1674년에 완공되었으며, 뒤이어 골고타 언덕과 십자가의 길이 조성됐습니다.
 
기원 소성당. 1652년 성모 성화가 처음 모셔진 자리를 기념하는 소성당으로, 제대에는 1653년 요한 페레트가 제작한 은총 성화의 첫 복사본이 모셔져 있다. 출처=마리아 플라인

도시의 아이콘이 된 위로의 어머니

성화 속 성모님은 아기 예수를 무릎 위에 눕힌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계십니다. 성모님을 바라보는 아기 예수의 시선과 두 분 사이의 손짓에서는 고요하고도 깊은 친밀감이 흐릅니다. 눈썰미가 좋은 분이라면 잘츠부르크 시내 곳곳에서 이미 이 성화를 보셨을 겁니다. 장크트 페터 수도원의 묘지 철문에 아이콘처럼 붙어 있는 그림이나, 도심 건물 곳곳의 성모자상 벽화가 바로 이 성화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성화 한 점이 불타지 않고 발견된 것이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30년 전쟁은 단순히 영토 싸움이 아니라 가톨릭 신앙의 존립을 뒤흔든 거대한 재앙이었습니다. 불길 속에서도 온전히 남은 성화는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성모님이 직접 건네는 위로와 희망의 징표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순례자들은 소박한 모성을 보여주는 이 성화에 보석 장식과 왕관을 봉헌하며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덧입혔고, 지금 우리가 보는 화려한 모습으로 남게 됐습니다.

마리아 플라인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잘츠부르크 시내와 알프스의 풍경이 실로 아름답습니다. 멋진 전망 덕분에 지금은 시민들의 사랑받는 나들이 장소로 꼽히지요. 과거에는 전쟁·질병으로 불안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이 언덕에 올라 기도했습니다. 오늘을 사는 순례자의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짧은 언덕길을 올라 잠시 숨을 고르면서 쉼 없이 돌아가는 삶의 바퀴를 멈추어 봅니다. 내가 아닌 하느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잘츠부르크에서의 여정은 관광으로만 끝나지 않고, 깊은 기도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겁니다.

 

<순례 팁>

※잘츠부르크 중앙역 지하 Lokalbahnhof에서 S1·S11 또는 버스 No.6을 타고 Salzburg Plainbrücke 하차 후 언덕길 도보 이동(총 20~30분). 중앙역에서 택시로 성당 입구까지 이동(10분 소요).

※순례 성당 미사 : 주일 및 대축일 8:30·10:00(순례 미사), 평일 8:00(토)·10:00(월~금) / 매일 묵주기도와 성체 강복 15:00. 매월 예수 성심 금요일(첫 금요일) 다음 토요일 14:30 월례 순례 미사. 성당 옆 Hotel Gasthof Maria Plain에서 숙식 가능.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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