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15일 발의된 ‘조력존엄사’ 법안과 관련 최근 서울대교구 가톨릭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장 구요비(욥) 주교가 이에 반대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는 법안이 안락사의 하나인 조력자살을 미화하는 것이며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천명했다. ‘존엄’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이 법안은 신자들조차 혼동하기 쉽고 교회가 가르치는 생명, 특히 생의 말기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조력존엄사와 안락사, 연명의료중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조력존엄사법)을 찬성하는 이들은 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경감하고,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존엄성이 존중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치료나 수술은 오히려 고통을 지속시켜 생명 존엄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의사에게 자살을 위탁시키는 행위로써 교회 가르침에 위배되는 안락사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안락사는 용어 자체가 ‘안락하게 죽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안락함보다는 죽음에 더 치우친 말”이라고 밝힌다. 왜냐하면 자연사한 경우는 아무리 평온하게 죽음을 맞더라도 안락사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재우 신부(세바스티아노·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원장 겸 생명위원회 사무국 부국장)는 “안락사는 죽음을 결정하고, 그것을 실행하여 죽는 경우를 말한다”며 “따라서 안락사에는 자살과 살인, 자살 방조가 들어있지만, 실상은 감춰져 있고 그런 면에서 용어 자체부터 혼란을 많이 일으킨다”고 말했다.
연명의료중단은 임종 과정에 들어선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부담이나 해가 되는 의료 행위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등이 해당한다. 이는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고, 윤리적으로도 가톨릭 가르침에 반하지 않는다. 연명의료중단 시기에도 통증 완화나 영양 및 수분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 같은 기본적인 돌봄은 계속된다.
조력존엄사법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생애 말기가 무의미하다는 의식을 조장하며, 죽음조차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내세운다. 이는 “모든 사람은 살아 있다는 사실 만으로 귀하고, 모든 생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 있다”는 가톨릭교회의 신념에 반하는 것이다. 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문희종 요한 세례자 주교)가 제13회 생명 주일 담화에서 강조한 것처럼 인간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죽음을 앞두고 살아있는 것이 의미 없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은 생명 경시의 한 단면이다. 서울대교구 가톨릭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담화를 발표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전문가들은 “임종 과정 중에 있는 가족이나 이웃에 대한 ‘돌봄’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사회적 여건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 대단히 시급하다”고 말한다.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는 것을 ‘짐’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부담 주지 말고 깨끗하게 삶을 마감하자’는 생각이 만연한 상황에서 돌봄에 대한 시선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재우 신부는 “생의 말기 돌봄의 바람직한 여건 조성은 앞으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내 나중에 생의 말기가 되면 이런 돌봄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예상을 할 수 있어야 현재 삶에 안정감을 얻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런 좋은 돌봄의 환경이 마련되도록 정부와 국회에 촉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