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사랑하고 자연을 아꼈던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의 삶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맞닿아 있다. 출처=www.carloacutis.com
“성 프란치스코와 카를로는 이제 서로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황금으로 된 실이 이 두 사람을 하나로 연결한 것처럼 말입니다. 늘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카를로의 삶의 계획, 성체 사랑, 성모 신심, 가난한 이들과의 우정, 이 모두가 그를 아시시의 빈자(貧者)인 프란치스코의 영성에 한층 가까워지게 합니다.”
2020년 10월 10일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시복식에서 아시시교구장 도메니코 소렌티노 대주교는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두 성인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창조 세계를 향한 특별한 사랑입니다. 카를로는 800년의 세월을 넘어 생태학의 수호성인, 동물의 수호성인인 프란치스코의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삶은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일화로 가득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프란치스코 앞에서 날갯짓을 멈추고 경청하는 새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굽비오 마을에 출몰한 사나운 늑대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이리 오너라, 내 형제 늑대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아무도 해치지 마라.” 성인의 말에 늑대는 온순한 양처럼 발밑에 와서 앉았고, 이후 2년간 마을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 꿀벌들에게 꿀과 포도주를 나누어준 이야기, 발에 밟힐까 염려하여 길 위의 벌레를 옮겨준 이야기, 매미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한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카를로 역시 특별한 감수성으로 하느님의 창조 세계를 대했습니다. 여름마다 아시시 시립 수영장에 다니곤 했는데, 저녁이면 인명 구조요원을 도와 수영장을 청소했습니다. 이때가 ‘곤충 구조요원’으로 활약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익사 위기에 놓인 곤충들을 뜰채로 조심스레 건져 축복하고 놓아 주었습니다. 또 움브리아 산맥에서 개들을 산책시킬 때면 쓰레기를 치우는 임무도 수행했습니다. 깨진 유리, 녹슨 병뚜껑, 담배꽁초, 종이 조각, 심지어 마약 중독자들이 버린 주사기까지. 카를로는 늘 장갑과 막대를 들고 다니며 묵묵히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바닷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안가로 밀려온 플라스틱 조각들을 주우며 바다를 지켰습니다. 카를로는 농담처럼 지구를 ‘돌고 있는 쓰레기통’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나친 소비가 만든 쓰레기로 몸살 앓는 지구를 걱정하는 경고였습니다. 또한 그의 사촌들은 물을 틀어놓거나 불을 켜두었을 때 카를로가 어떻게 꾸짖었는지 생생히 기억합니다.
카를로의 집은 동물로 북적였습니다. 고양이 밤비와 클레오파트라, 강아지 키아라와 폴도, 브리치올라와 스텔리나, 여러 마리의 금붕어. 그는 반려동물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취미인 영상 제작에서 주연으로 세웠습니다. 직접 각본과 무대미술, 편집과 음악까지 맡아 완성한 단편영화에서 동물들은 최고의 배우였습니다. <나쁜 고양이 군단>, <박물관에서의 패닉>, <뚱뚱보 스텔리나>, <일곱 마귀가 들린 강아지> 등의 영화 제목에서 소년다운 상상력과 유머 감각이 드러납니다. 친구들을 초대해 팝콘과 콜라를 나누며 상영회를 열 때면, 세상을 정복하려는 악당 고양이들의 음모에 착하고 순진한 개들이 맞서는 에피소드에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카를로는 때때로 아름다운 하늘과 풍경을 보고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지혜 13,5)는 말씀을 떠올리며 감동하였습니다. 자연에 투영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더욱 소리 높여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올 여름 참 더웠습니다. 해마다 지구는 더 더워진다고 합니다. 2024년 우리는 지구 표면 평균 온도가 산업 혁명 이전 시대보다 1.55°C 이상 상승한 전례 없는 지구 온난화를 경험했습니다. 해마다 더욱 심각해지는 이상 기후 현상은 지구가 놓인 절체절명의 위기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모범을 따라 우리 지구를 돌보고 지킬 때,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