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은 ‘감사’일 것이다.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삶이 신앙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한없는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과 그 사랑을 깨달아가는 당신 백성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하느님과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았다. 십계명은 단순히 의무로 지켜야 할 계명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받은 백성으로 살아야 할 삶의 방식이었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하느님께서는 죄와 악, 죽음의 굴레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친히 당신 아드님을 보내셔서 인간을 그 굴레에서 해방시켜주셨고 구원의 길을 걷게 해주셨다.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계명은 단순한 의무사항이 아닌, 구원받은 자녀로서 살아야 할 삶의 방식인 것이다.
최윤환 몬시뇰 사제수품 60년 기념 논총을 준비하며, 제목을 궁리하다 몬시뇰께서 평소에 좋아하시던 문구가 프랑스 작가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의 마지막 문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Tout est grâce.” 모든 것이 은총인 것을. 필자가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신자들에게서 자주 들은 표현도 이것이었다.
실로 모든 것이 은총이며, 우리 삶은 은총으로 가득 차있다. 은총이란 나의 능력이나 권리나 공로로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 아닌, 오직 하느님께서 당신 선의와 호의로 베푸시는 선물이다. 우리는 존재 자체를 선물로 받았으며,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 삶은 모든 것이 은총임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어리고 철없을 때는 없는 것, 불편한 것에 투정을 부리지만, 커가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는지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은총의 선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병이나 시련 중에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잔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 은총은 시련의 때에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시련 속에서 용기를 내어 앞을 향해 나아가도록 지지해주시며, 저 앞에서 우리를 맞아주고 계신다.
우리 인생은 하느님의 은총을 깨달아가며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는 학교다. 그 은총은 세상 모든 것, 특히 부모님과 가족의 사랑, 신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통해 전달된다. 이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천사요 가족이며 친구요 은인들이다.
혹여, 나에게는 왜 은총보다는 시련과 고난만 주어지는 것일까 하고 묻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런 분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함께 머물며 격려와 지지, 기도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이웃일 것이다. 시련 중에 있는 이에게 다가가 함께 기도하고 응원하며 격려하는 이가 없다면, 하느님 사랑을 나누는 이가 없다면, 우리는 모든 것이 은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시련과 고난도 과거의 일이 될 때, 주님께서 시련과 고난마저도 나를 성장시켜줄 은총의 계기로 삼으셨음을 우리는 함께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이 계시다. 그들에게 다가가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는 분이심을 전하고, 그분께 의탁하고 희망을 둘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일 것이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