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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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예수님을 따름과 그리스도인다움

연중 제 23주일 (루카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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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작 ‘성 마태오를 부르심’, 1599~1600.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 함께하던 많은 군중을 보시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누구를 미워하라.’는 예수님의 표현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성서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 보다 덜 사랑하다.’라는 비교급이 없는 셈족식의 표현이라는 겁니다. 즉 예수님을 무엇보다 첫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워하다’라는 단어가 주는 단호한 절연, 결단을 함축하면서, 예수님을 따름은 단순한 가족애나 자기애를 넘어서는 단호한 결단과 투신이 필요한 일임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말씀은 이렇습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14,27) 여기에서 눈여겨볼 표현은 “내 뒤를”(behind Jesus)이라는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에 ‘많은 군중이 그분과 함께 길을 가는’ 중이었지만, 참된 제자로의 투신을 위해서는 예수님(하느님의 뜻)을 앞세우고 그분의 삶, 그분의 가르침을 본받고 그대로 행하는 (‘그분 뒤에 따르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어지는 두 짧은 비유는 일견 문맥에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도 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14,28 이하)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14,31 이하) 탑을 건설하고 전쟁을 하는 일은 세상사 중에서도 상당히 무겁고 중한 일입니다. 집을 건축하는 것이 개인사에서 아주 크고 비용도 많이 드는 중대사이고, 전쟁을 하고 말고는 한 나라의 존폐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중대사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세상사에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계산하고 또 계산해서 어떤 결단을 내립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실존적 결단과 투신이 필요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박해 시대에는 목숨을 거는 결단이었고, 오늘날 현대에는 세속 풍조와 세상의 기준을 거슬러 하느님의 가치대로 살려는 용기와 투신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오늘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이해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14,33) 자기 소유를 다 버리라는 말씀은 이 세상 것에 초연하고 무관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 버리라는 말씀은 모든 것을 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방향으로 두라는 말씀입니다. 가족애도 자기애도, 가진 바 재산도 지위도 모든 것이 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방향으로 두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대원칙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쓸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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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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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을 찬송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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