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의미하는 라틴어 동사 ‘educare’는 ex(밖으로)와 ducere(이끌다)가 합쳐진 동사로, ‘밖으로 이끌어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잠재성을 밖으로 드러내고 완성으로 이끄는 것으로, 양육하고 성장시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재능을 찾아내고 양육하며 성장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는 말이다.
극도의 경쟁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고유한 재능과 창의력보다는 일률적인 기준에 맞춰 평가를 받아왔기에, 고정된 잣대로만 상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은 사람마다 고유한 능력과 재능이 있으며, 그것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어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둘, 한 탈렌트를 맡기고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와 셈을 할 때 받은 돈으로 재산을 불린 두 종은 칭찬을 받았는데, 마지막 종은 땅에 숨겼다가 그대로 가져와 꾸중을 듣고 가진 것마저 빼앗겼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 비유의 결론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한 탈렌트를 받아 탕진한 것도 아니고 그대로 돌려주었는데, 왜 가진 것마저 빼앗겨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삶에 관한 진리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고유한 능력을 지니고 살아간다. 우리는 저마다 능력이 다르며, 이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다. 자기 능력에 따라 탈렌트를 받았다는 것은 ‘양’보다는 ‘다양성’을 의미할 것이다. 루카 복음(19장)에서는 모두 한 미나씩을 동등하게 받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맡겨진 것을 ‘어떻게’ 하였느냐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유한 능력과 그에 따른 재능을 부여받았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타인을 위해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것으로, 각자 받은 재능을 얼마나 찾고 계발하여 공공의 유익을 위해 사용했는지에 따라 셈을 할 것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 비유는 묻는다. 내가 받은 탈렌트는 어떤 것인가? 나만의 재능을 찾아 그것을 유익하게 사용하여 교회와 세상,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있는가? 나한테는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면, 세 번째 종의 모습일 것이다.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타고난 고유한 재능이 있으며 그 고유한 재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재능은 젊었을 때 한순간에 태워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 갈고 닦고 쌓아 나이가 들수록 더 잘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나이에 무슨 재능을 찾는단 말인가’라고 말하기보다 ‘내가 한평생 살아오면서 발견하지 못한, 주님께서 맡겨주신 재능은 어떤 것일까’ 묻는 것이 더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성실히 해나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내 안에 갈고 닦이고 쌓인 재능이 빛을 발하며 드러날 것이다.
예수님의 재능은 연민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시던 인품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도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연민으로 사람을 대하는 재능을 갈고닦는 것이 아닐까. 그 재능은 활동만이 아니라 기도와 작은 희생, 봉사를 통해서도 발휘된다. 그렇기에 우리의 나이·건강 등과 상관없이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 주님께서 보내주신 일꾼으로서 맡은 바 사명을 기쁘고 충실히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