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 호교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는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제시한 위대한 신학자들이다. 테르툴리아누스(왼쪽), 오리게네스 중세 삽화.
3세기 그리스도교는 로마 황제의 조직적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지역 교회 주교들을 중심으로 교계제도가 든든히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비 신자 교육 기간도 3년으로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또 2세기 때부터 활발히 진행되었던 성경 정경 목록 작업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처럼 3세기 교회는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면서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하느님,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신앙 규범을 확정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 시기 성경 정경과 사도들의 전승에 기초해 삼위일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규범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역할한 두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호교 교부들인 서방의 테르툴리아누스와 동방의 오리게네스입니다.
최초의 서방 호교 교부인 퀸투스 셉티미우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155~230?/240?)는 그리스도론에 있어 서방이 동방보다 몇 세기 앞서는 큰 신학 업적을 남깁니다. 그는 삼위일체 하느님에게 ‘성삼’(Trinitas), ‘위격’(persona)이라는 신학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라틴 교부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 다음으로 뛰어난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평신도였던 그는 안타깝게도 몬타누스주의 이단에 빠졌을 뿐 아니라 극단적인 윤리 생활과 지나친 엄격주의를 강조해 배우자 사별 후 재혼하는 것도 간음이며, 박해를 피해 숨는 것도 배교이며, 배교·살인·간음 등 대죄는 교회도 사해줄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보편 사제직을 강조해 반 교계제도를 주장했습니다. 교회는 이를 ‘테르툴리아누스주의’라 부르며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하지만 몬타누스주의 이단에 빠지기 전 초기 그는 신학 저술을 통해 교회의 신앙 규범 틀 안에서, 유일하신 하느님의 본질 안에서 아버지·아들·영이라는 고유한 실재가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입증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오직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며 모든 것에 앞서서 발하신 그분의 말씀으로, 무에서 만물을 만드신, 세상의 창조주 외에는 다른 하느님이 없다고 믿어진다. 이 말씀은 그분의 아들로 불리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들에 의해 여러 모습으로 보여졌으며, 예언자들 안에서 항상 그 말씀이 들렸고, 마지막 날에 하느님 아버지의 영과 권능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내려오셨으며, 그분의 태중에서 육이 되셨고, 그분께 잉태되어 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으며, 그 다음에 새로운 율법과 하늘나라에 대한 새로운 약속을 설교하시고 기적을 행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믿는 이들을 움직이시는 대리자 성령의 힘을 보내셨고,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성인들은 영원한 생명과 천상 약속의 열매를 누리도록 받아들이고 불경한 이들은 영원한 불로 단죄하시기 위함이며, 육의 회복과 함께 영혼과 육 둘의 부활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진다.”(테르툴리아누스, 「이단자들의 규정」 13, ‘신앙의 규범’, 황치헌 신부 역, 「고대 교회사 사료 편람」 289쪽)
아울러 테르툴리아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이 항구하게 결합하여 실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육이 영이 되거나 영이 육이 되지 않는다. 물론 육과 영은 온전히 하나의 주체 안에 있을 수 있다. 이들로부터 예수가, 육으로부터 인간이, 영으로부터 하느님이 존재한다.”(테르툴리아누스, 「프락세아스 반박」 27.; 「교부들의 그리스도론」 460쪽)
이러한 테르툴리아누스의 신학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451년 칼체돈 공의회의 교의 선포에 기초를 제공합니다.
서방 라틴 교회에서 테르툴리아누스가 활동하던 시기 동방에서는 오리게네스(185~253)가 호교 교부로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 레오니데스가 순교하자 그 역시 순교를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과 철학 등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고신 극기에 힘썼습니다. 자주 단식하고, 맨바닥에서 자고, 두 벌의 옷을 갖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금욕 생활을 위해 스스로 거세를 했습니다. 이 일로 그의 사제품은 무효가 되고, 파문까지 받아 교회에서 내쫓기게 됩니다. 그는 로마 데치우스 황제 박해 때 체포돼 모진 고문을 겪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의 200여 편 저술 가운데 가장 대표하는 책이 「원리론」입니다. 하느님, 세상, 인간, 성경 등 네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가장 오래된 신학 교과서로 고대 교회 「신학대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리게네스 신학의 중심은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영이며 빛이며 절대적 원리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다스리는 분이시며, 성부의 선하신 형상인 ‘둘째 하느님’이신 성자는 성령과 함께 성부와 피조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는 또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로고스인 ‘신성’과 예수의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된 ‘인성’이 결합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밀접하게 결합해 있기에 신성과 인성의 속성들을 서로 교환해 적용할 수 있다는 ‘신인 속성 교환’ 이론을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신인 속성 교환 이론에 따라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인간 예수를 낳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속성들이 한 위격 안에서 서로 교환되기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