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참여 사제가 포르투갈 리스본 한 공원에서 고해성사를 한 순례자에게 강복하고 있다. OSV
제9장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전개 2. 중독 이해하기(3)
이제 구체적으로 중독의 예방이나 치료에 필요한 요소들을 생각해 봅시다. 첫째, 중독성 있는 물질이나 대상에 대하여 올바른 방법과 목적을 인식하고 제대로 ‘사용’함으로써 ‘오용’과 ‘남용’을 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감기약을 먹을 때 처방대로 하지 않고 대충 먹다 보니 복용량을 초과해서 먹었고 그 부작용으로 금방 잠이 들었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는 잘못된 방법을 썼기에 약을 ‘오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억을 떠올리고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 데도 잠을 자기 위한 목적으로 감기약을 먹었다면 그것은 ‘남용’입니다. 목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중독은 이처럼 올바른 사용의 범위나 목적을 벗어난 남용과 오용 때문에 일어나고, 자신이 더 이상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라 중독 물질이나 행위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게 합니다. 술을 마시는 목적은 친교, 돈을 버는 목적은 행복한 삶이 되어야 하는데, 그 대상의 방법과 목적이 바뀌어 오용하고 남용하게 되면 결국 술과 돈의 노예가 되어 건강을 해치거나 가족 간 불화가 생기는 등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삶의 주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것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 늘 성찰하며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둘째, 중독을 극복하려면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투사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솔직히 인정하고 진실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상대의 잘못이 있어도 모든 것이 남 탓일 수 없고 내 부족함도 있기 마련입니다. 남의 잘못은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내 잘못은 내가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많은 경우 주위에서 아무리 술이 문제라고 말해도 자신은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인정해야 해결할 힘도 생깁니다. 중독 환자들은 보통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다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독을 ‘자신이 자신에게 속는 병’이라고 말합니다.
중독 여부를 떠나서 누구나 스스로 성찰하고 진실을 마주하면서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톨릭 신자에게는 고해성사가 바로 그런 시간일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지 살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 자체가 은총입니다. 물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은 두렵습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용기가 있으려면 먼저 하느님의 ‘용서하는 사랑’에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으며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용기와 믿음은 우리가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법정 드라마에서 나타나듯, 실제 재판정에서도 자수는 대표적인 감경 사유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잘못한 일을 외면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과 동시에 벌을 받을까 두려운 감정이 앞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가톨릭교회는 고해성사를 통해 계속 죄를 고백하면서 그 죄와 마주하고 화해하기를 격려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보에 소개된 ‘낙태 후 화해 피정’이 눈에 띕니다. 낙태는 교회 안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어긋나는 큰 죄입니다. 그런데 낙태가 화해와 어울릴 수 있을까. 대체 누구와 화해를 하라는 건지, 화해가 가능하기는 한지 의문이 들어 피정을 주관한 착한목자수녀회를 찾아갔습니다.
담당 수녀님은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낙태는 죄입니다. 그러나 죄라는 그 자체보다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뉘우침으로부터 시작되고, 뉘우침은 결국 그런 행동을 한 자신과 마주하는 화해에서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우리는 무언가에 홀리거나 중독된 채 살고 있진 않나요? 그것이 알코올이든 어떤 잘못된 습관이든 말입니다. 어딘가에 습관적으로 매달리게 되거나 오용과 남용하는 일은 없는지. 그런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진 않은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태를 바로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혼자서 힘들다면 주변에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해보세요. 특히 교회 안에는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동반하는 많은 단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