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안치되어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난하신 예수님만 따를 것을 결심하고, 아버지와 아시시의 주교 앞에서 모든 것을 ‘벗어던진’(spogliazione) 장소로서,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이기도 하다.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지요? 미사 때마다 우리가 다 함께 소리 맞춰 말하는 부분입니다. 바로 ‘고백 기도’의 일부분이지요.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며 죄인인 우리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달라고, 성모님에게, 천사에게, 성인에게, 우리 서로에게 청하는 것입니다.
전구 기도
‘전구(轉求) 기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갑시다. 한자어 ‘전’(轉)은 ‘구르다, 돌다’의 의미가 있으며, ‘구’(求)는 ‘구하다, 청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국어사전에서 ‘전구’를 찾으니 “성모 마리아나 천사 또는 성인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은혜를 구하는 기도”라고 되어 있네요.
좀더 쉽게 접근해 볼까요? 초등학교 3학년인 예리는 매일 아침 등굣길에 길바닥에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얇고 허름한 옷을 입고 계시기에 이불을 덮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예리는 어머니에게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며 이불을 살 수 있는 용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평소 예리의 선행을 전하며, 이불을 살 수 있도록 예리에게 용돈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거들어주는 것입니다.
위의 비유에서 예리 아버지가 하느님, 예리 어머니가 바로 성인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성인들은 천상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며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또 지상에 있는 우리를 끊임없이 돌보아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과 대화하는 데 서툰 우리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잘 전해줍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
지난 7일 레오 14세 교황 주례로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의 시성식이 장엄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카를로 아쿠티스를 ‘성인’이라고 부르며 공적 경배를 드릴 수 있고, 전구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사실 카를로 성인은 이미 복자가 되기 전부터 천국에서 우리를 살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암 환자였던 한 여인이 카를로의 장례미사에 참여해 카를로를 위해 기도하고 전구한 결과 며칠 뒤 암세포가 모두 사라진 사례가 있습니다. 또 자녀를 간절히 원했지만 몇 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아 마음 고생하던 부부가 카를로의 장례미사에 참여하려고 로마에서부터 밀라노까지 찾아왔습니다. 장례미사 후에도 카를로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 결과, 마흔네 살에 임신이라는 기쁜 선물을 받게 된 사례도 있지요.
어린이의 마음을 지닌 성인
평소 카를로와 가까이 지냈던 친구와 지인들은 카를로에게 전구의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퍼져 나가면서 카를로 성인이 모셔져 있는 아시시를 찾는 순례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지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카를로 성인은 바로 이 복음 말씀에서 말하는 어린이와 같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했던 카를로 성인은 현세에서 그랬듯이 천국에서도 예수님 사랑을 전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베풀어주고자 나그넷길을 걷는 우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비록 공간은 달랐지만 2000년 대희년과 2002년 월드컵을 우리와 함께 경험한 친근한 소년 카를로 아쿠티스! 기도가 어렵고 자신 없다면 카를로 성인에게 바치는 전구 기도로 용기를 내볼까요? 카를로 성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곧 우리의 손을 잡아주며 예수님의 성심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입니다.
주교회의에서 30년째 근무 중이며, 현재 사료실 부서장으로 일하고 있다. 「출발! 기도 여행」을 펴냈으며, 카를로 아쿠티스가 수집했던 성체 신심 관련 교회사를 다룬 「하늘나라로 가는 비단길」을 공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