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는 가난한 사제들의 모임인 프라도사제회가 올해로 한국 진출 5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프라도사제회에 각별한 애정이 있습니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 총장 신부님께서 여러 회원이 보는 앞에서 서약자 명단 중 1번인 제 이름에 만년필로 줄을 그으며 “구 주교는 이제 더 이상 프라도 회원이 아닙니다!”라고 선언하셨는데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한국 프라도사제회 역사 초창기에 제가 책임자로 일하던 때의 일입니다. 처음으로 신학생 관심자들을 위한 피정을 가졌는데 저는 본당 일로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학생들을 동반하던 신부님들이 몇 번이나 전화해서 “학사님들이 대표 신부님을 보고 싶어 하네요!”라고 재촉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바빠서 참석은 어렵지만, 대신 기도 안에서 함께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며칠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외출을 하였다가 늦게 돌아오니 사제관이 시끌벅적한 것이 아닌가! 피정을 마친 다른 교구의 신학생들이 “대표 신부님이 계시는 사목 현장에 한번 가 보자!”라고 하여 모두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그들을 위해 ‘짜파게티’ 파티를 열었고, 모두 사제관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기쁜 마음으로 다음 날 헤어졌습니다. 그날 저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믿음은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데 필요한 으뜸 덕목은 ‘인간적인 신뢰’라고 하겠습니다. 대신덕(對神德)으로서의 신앙도 엄밀히 말하면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전적으로 신뢰하시고 당신의 일을 맡기시는 데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정화의 어두운 밤을 걷고 있는 인간 영혼의 청정무구한 순수한 상태를 신앙이라고 하면서, 이 신앙의 상태 안에서 하느님 은총의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데 이를 ‘조명(照明)의 단계’ 또는 ‘주부적 관상’(contemplatio infusa)에 들어가는 때로 보았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은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일하는 주님의 사도가 되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신앙 안에서 충실히 살아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저 무익한 종입니다. 단지 저에게 맡겨진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